한국일보>

권경성 기자

등록 : 2018.02.03 14:00

북한 위협이 한일 위안부 갈등 봉합? 정말이었다

국제정치학회 학술지 논문

등록 : 2018.02.03 14:00

‘대북 인식-합의 찬성’ 관련성 분석으로

‘公敵 나타나면 싸움 멈춘다’ 통설 실증

북한 두려움 클수록 “위안부 합의 잘했다”

다만 전면戰 아니면 소녀상 철거엔 반대

“냉전종식 뒤 부상한 역사충돌 다시 잠복

反日여론 무마 노린 정치권 악용 가능성”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작년 마지막 수요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한 뒤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이라는 주제로 소녀상을 설치하고 300개의 빈 의자에 헌화했다. 연합뉴스

‘공적(公敵)이 나타나면 싸움을 멈춘다.’ 한일 관계에 이 통설을 적용할 수 있음이 실증됐다.

북한 위협을 더 심각하게 느끼는 한국인일수록 한일 간 위안부 갈등을 봉합하는 데 찬성하는 경향이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래가 과거를, 불안이 거부감을 잠식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 내ㆍ외신 기자회견에서 ‘12ㆍ28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정부가 피해자를 배제한 채 조건과 조건을 주고받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당시 협상 과정에서 일본의 요구를 우리가 수용하는 ‘이면 합의’가 존재했다는 지난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의 검토 결과에 근거해서다.

그러나 2년여 전인 2015년 말 해당 합의 직후에는 호평도 없지 않았다. 결과야 어찌됐든 해묵은 과거사 갈등을 양국이 일단 덮고 향후 안보 현안 관련 공조를 긴밀히 할 수 있도록 저 합의가 토대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다. 실제 일본과 친하게 지내라는 미국의 종용이 있던 때고 2010년 거푸 일어난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사건 뒤 대북 감정도 악화일로였다.

한미일 안보 동맹은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한일 양국의 안보 이해관계와도 어긋나지 않는다. 얼마 전 낙마 사실이 알려졌지만 주한미국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과거 저서에 따르면, 한일 두 나라는 공통 대외 위협(북한)에 직면한 유사 동맹이어서, 그 위협이 클수록 양국 간 협력이 촉진된다.

최근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지 국제정치논총에 실린 ‘안보 위협이 과거사 인식에 미치는 영향’은 대북 위협 인식 정도와 위안부 협상 결과 지지 여부의 상관관계 분석을 통해 ‘외부 위협이 동맹의 응집력을 강화한다’는 이론의 경험적 증명을 시도한 논문이다. 대북 위협 인식이 클수록 한일 간 위안부 갈등 봉합에 찬성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논문에 따르면 응답자가 북한 도발에 의한 국지전ㆍ전면전 발발 가능성이 크다고 여길수록 위안부 협상 결과를 찬성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이와 함께 위협 인식이 보수 성향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검증됐다.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느끼면 진보적인 사람보다 위안부 합의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다만 소녀상 철거가 잘못됐다는 인식에 대한 대북 위협 인식의 영향력은 합의 지지 여부보다 작았다. 북한이 대규모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응답자만 소녀상 강제 철거에 찬성했다. 소녀상 강제 철거가 6ㆍ25전쟁 같은 어마어마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국지 도발 위협 정도로 수용키 어려운 합의란 인식이 한국인 사이에 확고하다는 얘기다.

두려움이 망각을 유도한다는 건 직관적으로 당연하다. 당장 위협에 신경 쓸수록 변화 시도 여력이 줄고 자신의 입지에 대한 불안은 지킬 게 많은 보수 성향의 사람일수록 더 크게 마련이다. 논문은 결과 설명에 두 가지 이론을 동원한다. 외부 위협이 존재할 때 대중은 기존 집권 세력을 지지하고(국내결집효과), 통상 위협은 강경한 대외 정책을 선호하는 보수정당에 유리하다(이슈소유권)는 것이다. 정권 지지가 정책(위안부 합의) 지지로 연결된 셈이다.

논문을 쓴 장기영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3일 “냉전 종식으로 대외 위협이 약화하면서 불거진 역사 갈등이 북한발 위협이 강해지자 다시 잠복하는 형국”이라며 “정치권이 대북 위협 강조로 위기감을 증폭시켜 반일 여론 무마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이번 연구 결과가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대북 위협의 효과가 소녀상 철거 문제에서 감소하는 건 소녀상이 국가 성범죄의 비인간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논문에는 2017년 3월 명지대 미래정치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함께 실시한 ‘정당과 사회통합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가 활용됐다. 이 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를 이용한 웹조사(CAWI)를 통해 이뤄졌고 신뢰 수준은 95%±3.1%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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