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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동존중사회를 여는 ‘국민경제윤리’교육

입력
2017.05.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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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자본주의화와 산업화는 처음부터 이른바 ‘지도된 시장경제(guided market economy)’를 지향했다. 시장경제이긴 했지만, 경제 주체들 간 생산 및 교환행위가 철저히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의 거대한 전제 아래 이루어지고, 그에 복무하도록 짜여졌다.

한국의 시장은 개인적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는 문화적 기반이 아니라 군부독재 국가가 통제하고 이끄는 바에 따르도록 구성되었다. 그에 맞설 시민사회도, 노동조합도 사실상 없는 가운데, 철권통치의 공기, 병영적 통제가 산업현장을 지배했다. 이른바 ‘까라면 까는’ 식의 군사문화가 자연스럽게 횡행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에서 웬만한 조직은 – 기업들까지 포함하여 – 상당 정도 군대식 상명하복 체제를 기초로 한다. 구성원들은 대체로 수평적 관계보다 수직적 관계에 익숙하고 민감하다. 민주주의, 자율, 자발성보다 타율과 명령이 의사결정의 주된 방식을 차지한다. 개별 조직들뿐 아니라 조직들끼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갑’은 ‘을’에게 ‘내가 너에게 기회를 주었다’라는 이유로 과도한 지배권과 통제권을 함부로 행사한다. 이른바 ‘갑질’이다.

거기에 유교적 관념이 왜곡되게 결합되어, ‘노동‘을 천시하는 관행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파고들어 있다. 신체와 두뇌를 사용하여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숭고한 창조적 행위인 노동은 ’아랫것들‘이나 하는 천박한 것으로 낙인 찍힌다.

주지하듯이 시장에서 노동과 조직은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노동을 구성하느냐의 문제이며, 그것은 어떤 조직(기업)의 시장에서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노동, 조직, 시장 모두 사회적 행위로서의 경제행위의 근간을 이루면서 어떠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틀이자 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고 나섰다. 매우 환영할 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노동존중사회’는 11개의 실천과제를 담고 있다. 그 중에 특히 ‘노동인권교육 의무화 및 알바 존중법 도입을 통한 전연령대의 노동기본권 보장’이라고 하는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들 개혁이라고 하면, 언제나 제도개혁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둔다. 허나 제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문화와 의식이다. 제도가 딱딱한 골조물, 하드웨어라면, 문화와 의식은 말랑말랑한 소프트웨어다. 제도가 뼈대와 골격이면, 문화와 의식은 피와 살이다. 인간의 행위는 외적 제도의 제약을 받으면서 큰 틀에서 방향이 이끌어 지지만, 기계와 로봇이 아닌 이상 전적으로 개인의 내면화된 가치 그리고 자신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나 그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적 유인이 같이 어우러지면서 비로소 특정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지금껏 평생 노동인권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병영적 통제, 수직적 조직문화, 갑질, 그리고 노동천시의 관행이 횡행해 온 사회에서 비정함과 부당함, 불공정에 치를 떨고 자존을 훼손당하며 경제활동에 임해 왔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꼭 그래야만 하는지, 다른 나라도 다 이런 건지 한숨을 쉬어 온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을 위한 노동인권교육. 기왕에 할 거면, 노동을 중심에 두되, 그 적용범주를 확장시켜 ‘국민경제윤리교육’으로 가면 어떨까. 더 넓은 범위에서 지금까지의 경제활동 관행상의 적폐를 겨냥해 우리 안의 문화적 후진성과 천박함을 극복하기 위한 내용까지 담는 거다. 청소년들의 학교교과목에서도 필수로 하고, 시민교육, 성인교육 차원에서도 강조될 수 있을 것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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