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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닿는 치과 의료기구 멸균도 안하고 재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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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닿는 치과 의료기구 멸균도 안하고 재사용

입력
2018.03.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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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신경치료에 이용하는 의료기구를 제대로 멸균하지 않고 재사용하는 치과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의 혈관에 직접 닿았던 의료기구를 다른 환자에게 다시 사용할 경우 에이즈나 간염 등 각종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

10년 넘게 치과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치위생사 A씨는 9일 한국일보에 “신경치료용 파일(file)을 사용한 뒤 알코올 솜으로 닦아 쓰고 있다”면서 “상당수 치과들이 제대로 소독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폭로했다. A씨는 “95명이 C형 간염에 집단 감염된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 사태는 근육에 놓는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한 게 원인이지만 신경치료용 파일은 혈관에 직접 닿는 것이어서 더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치아는 혈관, 신경으로 이뤄진 치수를 단단한 겉면이 싸고 있는 형태다. 신경치료라고 하면 충치를 비롯한 감염 때문에 회복이 불가능한 치수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치과에서는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한 나사못 형태의 파일을 돌려서 치수에 박아 넣은 뒤 잡아 당기는 방법으로 치수를 제거한다. 신경과 혈관이 들어 있는 치수를 빼내다 보면 신경치료용 파일에 환자의 혈액이 묻을 수밖에 없다.

신경치료는 파일을 치수에 박아 넣은 뒤 빼내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그림은 치수와 끝 부분에 생긴 고름을 제거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신경치료는 파일을 치수에 박아 넣은 뒤 빼내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그림은 치수와 끝 부분에 생긴 고름을 제거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신경치료용 파일은 고위험 기구로 분류돼 엄격한 멸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치위생감염관리학회가 연세대 원주산학협력단에 의뢰해 2015년 만든 ‘치과진료실 감염관리 지침서’에 따르면 고위험 기구는 소독약에 담아 1차 세척한 뒤 건조해 멸균용 포장에 넣어 멸균기로 돌려야 한다.

제대로 된 멸균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각종 질환에 감염될 수 있다. 노희진 연세대 원주의대 치위생학과 교수는 “기구가 균에 오염된 후 다른 환자에게 사용되기까지의 시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상태 등에 따라 결과는 다를 수 있지만 혈액을 통해 에이즈, C형 간염 등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타액을 통해서는 독감, 메르스, 결핵 등이 전염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이 돼도 치과 치료 중 감염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치과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바늘처럼 가는 나사 형태로 만들어 치아 속 신경조직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신경치료용 파일.
바늘처럼 가는 나사 형태로 만들어 치아 속 신경조직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신경치료용 파일.

멸균과는 별개로 재사용에 따른 문제점도 크다. 재사용을 하다 보면 금속으로 된 파일의 뾰족한 앞 부분이 부러지게 되는데 제거하기가 까다로워 그냥 덮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 결정 사례를 보면 치과에서 어금니 신경치료를 받은 뒤 고통이 너무 심한 환자가 다른 치과에서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니 부러진 신경치료용 파일이 나왔다. 치아 안에 바늘 같은 파일이 부러져 박혔는데 환자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이다. 소비자원은 의료진에게 수술 치료비와 위자료를 합한 손해배상금 5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파일 부러짐으로 인한 위험과 감염 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신경치료용 파일을 제대로 멸균하지 않고 재사용하는 이유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가 때문이라고 치과병원 원장들은 입을 모은다. 치과를 운영하는 B원장은 “신경치료 수가가 1만2,000원인데 치아 1개를 치료하려면 보통 한 개에 1만원이 넘는 파일을 세 개 사용한다”면서 “최소 세 번은 사용해야 원가를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포털사이트의 치위생사 카페에서는 ‘20번은 사용한다’ ‘부러지기 전까지 사용한다’ ‘안 사고 3년째 쓰고 있다’는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경치료용 파일은 환자의 혈액에 직접 닿기 때문에 반드시 멸균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른쪽 사진의 의료기구처럼 멸균용 포장에 들어 있어야 하지만 제대로 멸균하지 않고 왼족 사진처럼 통에 담아놓고 사용하는 치과들이 많다.
신경치료용 파일은 환자의 혈액에 직접 닿기 때문에 반드시 멸균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른쪽 사진의 의료기구처럼 멸균용 포장에 들어 있어야 하지만 제대로 멸균하지 않고 왼족 사진처럼 통에 담아놓고 사용하는 치과들이 많다.

감염을 차단하려면 멸균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과정이 번거롭고, 멸균기 가격이 비싸 들여놓는 치과는 많지 않다. EO(Ethylene Oxide)가스 멸균기는 가격이 최소 500만원 정도로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독성이 강한 가스를 사용해 위험한데다 한 번 멸균에 10시간이 넘게 걸려 큰 병원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다. 안전하고 1시간 안에 멸균이 되는 플라즈마 멸균기는 가격이 3,500만원 이상이다.

신경치료용 파일 재사용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지난해 10월 31일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김광수 의원은 “일회용 주사기보다 심각하게 감염을 유발할 수 있는 치과 신경치료용 파일을 재사용하고 있는데 실태 파악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직 실태 파악, 대책 마련을 위한 조치는 전무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3월 이후 대한치과협회 보수교육 때 감염관련 교육을 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장 점검은 아직 준비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치과 감염관리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해결책을 찾겠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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