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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쉰내 나는 개헌안이 의미하는 것

입력
2017.03.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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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4일, 여왕, 혹 대통령 박근혜가 임기 내 개헌을 하교하였다. 최순실 게이트로 수세에 몰렸던 청와대의 갑작스런 개헌 주장에 여당은 “애국의 결단”(김무성 전 대표)이라는 등 환영의 뜻을 표했고, 정국은 개헌을 주제로 요동쳤다. 이게 만화였다면, 청와대는 ‘계획대로’라며 웃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저녁 JTBC는 국정 농단의 증거가 담긴 ‘최순실 태블릿’을 독점 보도한다. 그렇게 개헌이란 여왕의 승부수, 혹 음모는 허무하게 날이 꺾였다. 여왕은 몇 번이나 머리를 숙였지만 그 때마다 거짓말을 했고, 결국 국민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2017년 3월 10일 파면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5일이 지난 3월 15일, 다시 개헌 얘기가 수면 위로 부상한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대선 당일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그간 물밑에서 논의가 이뤄지긴 했으나 아예 투표일을 못 박은 것은 처음이다. 이를 위해선 3월 말까지 개헌안이 발의돼야 한다.

말이 좋아 여야 3당이지, 개중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2개 정당은 사실 새누리당이 쪼개진 정당이다. 바로 그 파면된 대통령의 소속 정당 말이다.

마치 거울로 비춘 것 같은 양상이다. 여왕이 개헌을 승부수로 던진 날 저녁, 대통령 탄핵에 이른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윽고 대통령이 파면되자, 바로 그 여왕을 따르던 자들이 다시 개헌을 승부수로 꺼낸 것이다.

그들의 개헌론은 유통기한이 지난 탓인지 쉰내가 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외형상으로나마 국민 여론을 수렴할 장치를 마련하려 했건만, 그들의 개헌 논의는 국민들을 아예 논의 과정에서부터 배제하고 있다. 개헌안이 발의될 3월 말까지는 앞으로 보름이 채 남지 않았으며, 그때까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만으로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 우긴다면 그들은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국민투표는 마땅히 앞서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숙의까지 이뤄진 후에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헌데 지금은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대선을 치를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이는 개헌안의 내용은 알 것 없으니 도장만 찍으라는, 민주주의의 시늉에 불과하다.

3당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알려진 내용도 극히 적다. 그나마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와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수준에서 합의가 있었을 뿐이고, 이 또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불분명하단 것이다. 대통령은 외교, 국방 등을 맡고 총리는 내치를 맡는다지만, 세계화 시대에 이를 무 자르듯 구분할 방법이 없다. 외교가 의전, 패션쇼, 외국어 구사와 동의어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분권형 대통령제가 내각제에 비우호적인 여론을 달래기 위한 말장난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 선진국에서 주로 내각제를 선호하며, 연정과 협치를 통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웃 어느 나라처럼 특정 정당이 수십 년을 장기 집권하거나 의원직을 세습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개헌만큼이나 중요한 건 이름만 분권형으로 붙이는 게 아니라, 선거제도 개편, 자치 및 권력 감시 장치 강화 등으로 정말 권력을 나눌 장치를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이다.

박근혜는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이를 은폐해왔다. 그의 개헌 제안 또한 자신의 스캔들을 덮기 위한 목적에서 나왔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로 인하여 비록 왕은 파면되었으나, 그를 따르던 자들은 끝까지 국민을 배제한 채 개헌안을 부화하려 한다. 이건 민주주의를 외치며 광장에 섰던 우리에게 왕의 수족들이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권력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라는.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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