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겨를] 새 옷 입은 폐교에서 '도란도란 여름밤'

입력
2017.08.02 04:40
0 0
경기 파주시가 폐교된 지 20년 된 옛 금곡초교를 리모델링해 21일 개장한 별난독서캠핑장. 이종구 기자
경기 파주시가 폐교된 지 20년 된 옛 금곡초교를 리모델링해 21일 개장한 별난독서캠핑장. 이종구 기자

푸르게 펼쳐진 잔디 운동장 옆에 설치된 목재 데크에 텐트를 쳤다. 모처럼 아내와 호젓하게 휴식을 즐기기 위해서다. 캠핑장 옆으로 우거진 숲 그늘에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 2시, 푹푹 찌는 더위를 피해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원한 실내에서 아이들과 함께 독서 삼매경에 빠지며 무더위를 식혔다. 막내 선화(12ㆍ초교5)도 조금은 분위기가 색다른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을 꺼내 펼쳐 보았다. 가끔은 오빠 창우(14ㆍ중1)와 수군대며 웃는다.

경기 파주시가 폐교된 지 20년 된 옛 금곡초교를 리모델링해 21일 개장한 별난독서캠핑장 내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별난독서캠핑장 제공
경기 파주시가 폐교된 지 20년 된 옛 금곡초교를 리모델링해 21일 개장한 별난독서캠핑장 내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별난독서캠핑장 제공

자유독서를 마친 뒤 도서관 옆 세미나실에서 독서체험 프로그램인 ‘책과 하나되기’에 아이들과 참여했다. 아이들은 교육 강사의 독서방법 등의 설명을 들으며 책과 친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유명한 전래동화책을 읽고 주어진 주제에 맞게 글을 작성해보고, 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가족과 함께 불판 옆에 옹기종기 모여 고기를 구워먹는 등 바비큐파티를 오붓하게 즐겼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캠핑장 주변을 산책하며 꽃과 나무들을 구경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워본다.

최근 이탁주(40)씨네 가족이 경기 파주시 법원읍 ‘별난독서캠핑장’에서 야영하며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추억 얘기다.

선화 어머니 송명화(43ㆍ교사)씨는 “폐교였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시설과 분위기가 좋았다”며 “아이들이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저녁 시간대 파주별난독서캠핑장 모습. 독서캠핑장 제공
저녁 시간대 파주별난독서캠핑장 모습. 독서캠핑장 제공

서울에서 차로 40분이면 닿는 별난독서캠핑장은 자연을 마주하면서 독서와 캠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파주시가 전국 최초로 폐교된 지 20년 된 옛 금곡초교를 리모델링해 21일 개장했다. 널따란 교실의 벽을 헐어 말끔하게 만든 도서관과 학생 50여명이 둘러 앉아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세미나실을 갖췄다. 도서관 밖에는 잔디 운동장과 캠핑사이트, 숲 속 작은 도서관이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한결 운치를 자아냈다.

동아리 모임으로 이곳을 찾은 연세대 재학생 조유림ㆍ백인진씨는 “낡고 스산한 분위기의 폐교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빈 학교들이 다양하게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폐교를 색다른 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전국적으로 무수히 많다. 1999년 폐교한 경북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 망정초등학교는 휴양시설인 ‘블루닷(Blue Dot)’으로 재탄생했다. 구미의 한 중소기업체 대표가 매입해 직원 연수원으로 사용하다 최근 게스트하우스로 다시 문을 열었다.

교실로 쓰였던 건물은 기업체 연수가 가능한 큰 객실과 강의실로 바뀌었다. 급식소가 있던 자리는 레스토랑과 카페로 변신했고, 창고는 바비큐 파티장으로 리모델링됐다. 1만㎡의 넓은 운동장은 파릇한 잔디와 연못으로 꾸며졌다. 기존 시설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새로운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블루닷은 칠곡은 물론 구미와 대구까지 소문난 힐링 명소다. 도자기와 그림, 서예작품이 박물관처럼 전시되고 유명 예술가의 작품전도 틈틈이 열린다. 드넓은 잔디밭은 야외 결혼식 장소로 유명하다.

충남 당진시 순성면 아미산 자락에 있는 아미미술관은 1993년 페교된 유동분교를 예술인 부부가 사들여 미술관으로 꾸몄다. 시골 미술관임에도 하루 평균 100여 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2000년 폐교된 경기 평택시의 서탄초등학교 금각분교는 평택시 등이 생활 친화적 문화공간인 ‘웃다리문화촌’으로 조성해 2006년 문을 열었다. 2016년 부산 동구 초량동 옛 부산디자인고 자리에 문을 연 부산과학체험관은 100% 체험 전시물로만 구성된 전국 최초의 과학관으로 유명하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폐교 활용사례도 적지 않다. 부산 가락초 해포분교를 리모델링한 부산수상레포츠스쿨은 해양도시의 면모에 걸맞은 수상체험과 생존수영 등을 교육한다. 해발 7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강원 강릉시 왕산면 옛 대기초교를 새롭게 꾸민 산촌체험학교는 숲 탐방과 산촌농사체험 프로그램을 제공, 한 해 1만명이 넘는 체험객이 찾고 있다.

지난 1999년 3월 문을 닫은 경북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 망정초등학교를 휴양시설로 리모델링한 블루닷 연수원. 1만㎡의 넓은 운동장은 파릇한 잔디와 수목으로 꾸며졌고, 학교 급식소는 카페와 식당으로 변신했다. 교실로 쓰였던 학교 건물은 연수원 강의실과 숙소로 리모델링됐다. 칠곡=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지난 1999년 3월 문을 닫은 경북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 망정초등학교를 휴양시설로 리모델링한 블루닷 연수원. 1만㎡의 넓은 운동장은 파릇한 잔디와 수목으로 꾸며졌고, 학교 급식소는 카페와 식당으로 변신했다. 교실로 쓰였던 학교 건물은 연수원 강의실과 숙소로 리모델링됐다. 칠곡=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그렇다면 폐교 재생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폐교는 저출산 여파로 학생이 줄면서 등장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수는 2010년 402만명에서 지난해 268만명으로 33.3%(134만명) 감소했다. 2030년에는 259만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바른정당 황영철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작년 출생신고 자료를 보면 전국 1,670개 시ㆍ군ㆍ구ㆍ읍ㆍ면 중 출생신고가 10명 이하인 곳이 42.4%(708개)에 달했다. 경북이 135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남 119곳, 전남 110곳 순이었다.

저출산과 학생 수 감소에 따라 작은 학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생 수가 60명 이하인 초중고교 수는 2001년 700개교에서 지난해 1,813개교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학교 통폐합이 더해져 구도심이나 농산어촌의 폐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0년 3,386개교였던 폐교는 지난 3월 기준 3,683개로 늘었다. 이 중 매각된 곳을 뺀 1,353곳을 교육청이 폐교로 관리하고 있다. 이중 69%인 930여 곳이 교육ㆍ문화예술ㆍ체험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폐교 현상은 상대적으로 농촌지역이 더 심각하다. 저출산 문제에 젊은 층의 이탈까지 겹치면서 문을 닫는 학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 농촌지역이 많은 전남(806)과 경북(704), 강원(448) 지역의 폐교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전체 폐교(3,683)의 53%에 달한다. 출산율이 더 떨어진 최근에는 한해 평균 초중고교 백여 곳이 문을 닫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폐교는 가족캠핑장과 박물관, 체험학습장, 농촌학교 등으로 다양하게 재생되면서 문화예술시설의 새 옷을 입었다.

폐교가 지역 주민의 짭짤한 소득원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강원 삼척시의 옛 두타분교를 새롭게 꾸민 마을자립형 정원사업장 ‘삼척미로(未老)정원’은 야영장과 방갈로, 수목정원, 향토음식점 등 숙박체험 시설을 갖춰 주민의 소득증대를 꾀하고 있다. 강릉시 산촌체험학교(대기초교), 연곡면 ‘소금강 농촌문화학교’(삼산초교), 경북 포항시 ‘아라예술촌’(동부초교) 등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의 소득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폐교관리로 골머리를 앓던 각 지역 교육청도 폐교 활용이 늘면서 관리부담에서 다소 홀가분해졌다. 폐교를 민간이 빌려 주면서 1년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관리비를 줄이는 동시에 임대 수익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폐교의 재활용이 직접적인 지역주민의 소득증대로 이어지는 사례가 아직은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폐교는 ‘폐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교육시설이나 사회복지ㆍ문화ㆍ공공체육ㆍ주민 소득증대시설 등으로 임대해 활용할 수 있다.

교육청은 이중 마을공동체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폐교인 만큼 마을주민이 원하는 공간으로 활용을 유도한다. 그러나 마을주민이 폐교를 활용하기 위해선 주민 50% 이상 동의가 필요하고, 사업계획이 정해졌더라도 주민들이 운영하기에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외부에 맡기는 일이 흔하다. 실제 경기도교육청이 관리하는 81개 폐교 중 47개가 교육용 시설로 활용되는 반면 지역주민을 위한 소득증대 시설은 5개뿐이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는 “지역주민의 자발적 계획이 아닌 외지인들에 의한 폐교활용은 자칫 주민들이 소외될 수 있다”며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하고, 진행 단계에서도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ilbo.com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