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1명이 100명 살린다, 인체조직기증을 아시나요?

알림

1명이 100명 살린다, 인체조직기증을 아시나요?

입력
2016.10.24 20:56
0 0
대형사고 및 질환치료를 위해 인체조직 이식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기증부족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인체조직기증과 관련된 국민인식 개선을 통해 기증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제공
대형사고 및 질환치료를 위해 인체조직 이식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기증부족으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인체조직기증과 관련된 국민인식 개선을 통해 기증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제공

1명의 기증으로 100명 이상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인체조직기증. 하지만 기증부족으로 인체조직 이식재의 75%는 해외에서 수입되고 있다. 미국ㆍ유럽 등 주요 수입국도 테러에 노출돼 있어 이식재 부족사태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이사장 서종환)과 함께 ‘인체조직기증 캠페인’을 3회를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인체조직 수요 매년 늘지만

이식재 75%는 수입에 의존

인지도는 절반도 채 안돼

“나도 잠재적 수혜자” 인식 필요

공적 역할 부각, 활성화 시켜야

“얼마 전 이슬람국가(IS)가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테러를 저질러 피부이식재 수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형화재라도 발생하면 정말 큰일이야. 별 일 없어야 하는데.”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는다고 1주일 뒤 서울 강남 코엑스 일대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근처 백화점, 호텔까지 번졌다. 화재로 화상을 입은 사람의 숫자가 수천 명에 달했다. 급성 화상환자들은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생명이 위태롭다. 미국, 독일 등 주요 수입국에서 또 다른 테러에 대비해 사체피부 등 인체유래물의 해외반출을 줄였기 때문이다. 급성 화상환자들은 대부분 넓은 범위에 화상을 입은 중증 환자로 제때 피부를 이식 받지 못하면 패혈증 등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다.

인체조직 수입의존도 높아 ‘악순환’

가상 시나리오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인재(人災)가 도사리고 있는 ‘위험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우리나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고령화와 산업화로 인한 각종 질병과 사고로 후천적 신체결함을 가지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화상, 골절, 뼈암, 혈관, 시각질환 등으로 인체조직 수요량은 매년 10%이상 늘고 있지만 인체조직 이식재 국내생산 비율은 2014년 기준 25%(식품의약품안전처)에 불과하다.

미국이 2013년 4월 미국 보스턴에서 발생한 ‘보스턴마라톤 테러사건’ 이후 자국 내 대형 테러에 대비해 해외 반출량을 줄이자 2014년 내내 사체 피부 수급난이 발생해 일반 중증 화상환자들이 이식재를 기다리며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일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피부이식재 원재료와 완제품의 91.5%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화상 전문의들이 “피부이식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형 화재라도 발생하면 1주 안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환자들이 사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인체조직 이식재 생산ㆍ수입현황]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단위(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인체조직 기증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각 국가는 그 거주자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수의 장기(인체 유래물)를 제공함으로써 장기기증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빈곤국의 빈곤층을 착취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서종환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이사장은 “수입된 이식재는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해도 역추적이 힘들고, 이식재 수입 시 가격이 상승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동일 인종의 인체조직이 이식 시 적합하기 때문에 자급자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낮아 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가 20세 이상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인체조직기증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2.4%(424명)만이 인체조직기증을 인지하고 있었다. 99.4%(994명), 98.7%(987명)의 인지도를 기록한 헌혈과 장기기증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인지도가 저조하다 보니 생전에 기증을 약속하는 ‘희망서약’의향도 42.3%로 인지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희망서약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응답자도 12.3%나 됐다. 응답자들은 ‘막연한 두려움 기증’과 ‘서약 거부감’ ‘남보다 먼저 실천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등의 순으로 서약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인체조직기증이 장기기증보다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드라마틱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장기기증은 기증자의 장기를 적출해 수혜자에게 바로 제공되지만 인체조직기증은 최장 5년에 걸쳐 기증된 뼈 연골 근막 피부 양막 인대 건 심장판막 혈관 신경 심낭 등이 각종 질환과 사고로 다친 환자에게 이식된다. 서 이사장은 “장기기증처럼 극적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거룩한 희생으로 100명이 넘는 환자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인체조직기증이 활성화돼야 국민건강은 물론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증 가능한 인체조직들.
기증 가능한 인체조직들.

누구나 잠재적 수혜자 인식 필요

전문가들은 윤리적 측면을 강조한 홍보에서 탈피해 인체조직기증의 공적 역할을 부각해야 인체조직기증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체조직기증은 수혜자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하지만 기증자 혹은 기증자 가족이 질병을 앓을 수 있어 잠재적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김현철 이화여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인체조직기증은 자신보다 남을 아끼는 이타심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기증자와 기증자 가족에게도 이익이 되는 역설적 구조를 갖고 있다”며 “인체조직기증은 일종의 위험을 담보하는 공적보험과 유사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TV에 나오는 예쁜 연예인처럼 긴 머리에 염색도 해보고 싶고, 화장도 해보고 싶은 사춘기 소녀 은영(14)양. 은영이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피부, 그리고 팔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이다. 5살 때 화재로 인해 전신화상을 입은 은영이는 성장할 때마다 자라지 않는 화상피부로 인해 매년 수술이 필요하다. 성장이 멈출 때까지 재활과 수술을 반복해야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사고 발생 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은영이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치료를 잘 받고 성인이 된다면 훗날 은영이는 100명을 살리는 생명파트너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유명무실한 기증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재산을 내어 놓는 것보다 더 힘든 인체조직기증을 쉽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재산과 재능을 기증하는 문화도 따라서 성숙될 것”이라면서 “인체조직기증이 활성화되면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문화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