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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제국의 위안부’ 기소에 부쳐

입력
2015.11.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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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청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간의 정상회담에서도 노다 전 총리가 똑같은 요구를 한 적이 있다. 한국 언론은 대사관 앞의 소녀상이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고 대사관을 설치하기로 했을 때, 두 나라는 대사관 지위와 주변 관리에 대한 각서를 교환했을 것이다. 대사관 주위는 대사관을 설치한 나라에 대한 공격이나 혐오가 금지된 공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 세계의 대사관 주위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이 될 것이다. 알다시피 지구상에는 한일 두 나라와 버금가는 앙숙이 많은데, 모든 나라가 한국을 모범 삼는다고 생각해보라. 선전 포고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서로에 대한 우호가 가정(假定)되어야 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대사관이다. 일본 총리의 요구는 외교 각서와 국제 외교 관례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난 25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석한 한 할머니가 소녀상에 묻은 빗물을 닦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 25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석한 한 할머니가 소녀상에 묻은 빗물을 닦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한 의도도 깊이 따져봐야 한다. 아베 총리의 요청이 진심이고자 했다면, 정상회의에 앞서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선물을 가져 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올 한 해 동안 일본 정부가 군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를 뒤집으려고 애썼던 장본인이다. 그랬던 만큼 자신의 요구가 어처구니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런 ‘쇼’를 한 것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게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이 일본의 목에 걸린 ‘가시’라고 여기지만, 아베와 같은 우익 세력에게는 ‘알박기’처럼 흥감한 일이다. 자국의 대사관 앞에 설치된 ‘혐오ㆍ적대’ 시설은 평범한 일본인마저 혐한으로 돌아서게 해주니 말이다.

여기에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했던 어떤 충고를 대입해 보자.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백성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것은 이루기 힘든 희망 사항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시한 차선책이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를 ‘두렵게(공포)’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주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최악은 백성들이 군주를 ‘경멸’하게 되는 사태라고 했다.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은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경멸하게 만든다.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상관없이 일본인은 한국을 ‘제 멋대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국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방법은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는 대신, 전국의 마을마다 하나씩의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는 것이다. 아마도 식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이래 친일파가 득세해온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갈등은 민족주의를 동원할 수 있게 해주는 자산이다. 현재의 한일 정부에게는 소녀상이 필요하다.

2011년 12월 14일 처음 세워진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소녀상)은 커다란 일을 했다. 이 동상이 있었기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탄력을 받았고, 해외로까지 동상 건립이 이어졌다. 하지만 적당한 계기에 이 동상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도 이제부터 친일파가 되는 것일까? 제대로 된 사회라면 더 많은 이견을 환대해야 한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는 올해 2월 법원으로부터 34곳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고, 6월에 복자(伏字) 처리가 된 삭제판을 냈다. 그런데 처음에 지은이를 고소했던 위안부 관련 단체는 ‘복자 처리’가 자신들을 농락한 것이라며, 출판 중지를 요구했다. 일제 강점기에 복자 처리된 책이 꽤 나왔으나, 일제 경찰도 그것마저 트집 잡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찰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저자를 기소했다. ‘제국의 위안부’가 민족ㆍ국가ㆍ남성이 독차지해 온 공식 역사와 다른 목소리를 내다보니, 위안부에 대한 고정된 상식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이견이 없으면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사상이 생겨날 수 없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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