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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 최종현 SK회장의 나무 심는 마음

입력
2018.06.28 11:00
수정
2018.06.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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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된다. 그 꿈은 처음에는 작고 미미하지만 대범한 발걸음에 위대한 현실이 되기도 한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고(故) 최종현 SK회장의 생명의 숲을 사후 20주기를 앞두고 찾았다. 40여 년 전에는 더욱 오지였을 충주호 주변의 인등산(人登山) 중턱에 ‘SK임업’이란 감추어진 듯한 조그만 표지판이 수줍게 반긴다. 지나다니는 길손들은 이곳이 연매출 100조 원에 가까운 에너지와 정보통신, 종합화학의 세계적인 대기업 SK의 임업회사라고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겸손과 고집의 최 회장은 국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척박한 민둥산에 꿈나무인 묘목을 심었다. 이때 새마을 사업으로 동네마다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면서 생겨난 처치 곤란한 몇 십 년 묵은 대량의 썩은새를 모아 거름으로 사용했다는 반짝이는 전설도 있다.

1970년대 초반은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어수선했고, 회사는 석유사업 진출로 강행군을 펼칠 때다. 그 와중에 최고경영자가 한가롭게 보일 만큼 묘목을 심었다.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여 한국을 이끌 젊은 엘리트를 키우듯 나무를 길러 거대한 숲을 이루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했던 굳은 의지가 그것이다. 그 꿈의 결실이 이곳 인등산 360만 평에 100만 그루 가까운 자작나무와 가래나무의 거대한 생명의 숲으로 우리 앞에 장엄하게 다가온다. 나무 심는 고독한 망중한에는 선비가 과거보러 넘는다는 바로 앞에 보이는 천등산 박달재의 금동이의 설화가 스쳤을지도 모른다. 나무 심는 일은 끈질기게 인내해야 하는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 자체이다. 자연에 맞서거나 서둘러서도 안 되고, 그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몸가짐으로 열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최 회장께서는 ‘수도권에 토지를 확보하면 나중에 조림지에도 보태고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주변의 권유를 ‘내가 땅장수인 줄 아느냐’고 냉정하게 내쳤다고 한다. 수도권에 토지를 확보해 나무를 심고 가꾸다 20~30년이 지나 수도권이 확대 개발되면 부동산 가치는 엄청나겠지만 여태까지 가꾼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것을 걱정해서였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비즈니스의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는 더 큰 가치를 나무사랑에서 찾은 선각자의 결단이었다. 해서 부동산 수익이 보장되는 수도권을 버리고 멀리 오지 산골을 뒤졌다. 도(道)와 도의 가파른 경계지점인 충주 인등산,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 오산 등의 1,200여 만평 임야가 그것이다. 이곳에 자작나무, 가래나무, 호두나무, 흑호두나무, 루브라참나무 등 80여 종 330만 그루가 거대한 숲을 이룬다. 나는 20여 년 전 파주 적성에 자작나무 묘목 500 주를 심었다. 나무심기의 첫걸음은 이렇게 미약했다. 도로가 신설되면서 10년을 잘 키운 나무를 옮겨야 했다.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에서일 것이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개발로 빼앗기지 않을 땅을 찾아야 했다. 나무들이 영생할 녹색공간을 마련한 것이 포천의 20만 평 나남수목원이다.

국가의 미래를 나무와 숲이라고 여기고 40년 넘게 열정을 바쳐 만든 훌륭한 숲을 우리에게 선물한 큰바위 얼굴들이 계셔서 우리는 살 만한 사회에서 사는 보람을 갖는다. 최종현 회장에 이어 ‘대한민국 녹색대상’을 받은 백제약품 창업자 김기운 회장의 전남 강진 초당림(草堂林) 300만 평에는 300만 그루 가까운 삼나무, 편백나무, 백합나무가 비밀의 정원을 이룬다. 임종국 선생이 가꾼 장성 축령산의 78만 평의 편백나무숲은 피톤치드의 세례를 받는 성지가 되었다. 무림제지가 강원도 인제에 조성한 180만 평 자작나무숲도 우아함의 극치다. 선각자의 꿈은 이처럼 하늘같이 높기만 하다.

조상호 나남출판ㆍ나남수목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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