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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적폐수사가 예술에 가까워야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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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적폐수사가 예술에 가까워야 하는 까닭

입력
2017.11.12 19:5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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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

세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담이라는 관리 얘기다. 그가 충주 안동 목사ㆍ부사로 지방관을 지낼 때 고을 백성들은 그 덕을 입었다. 강도와 도적을 원수같이 싫어해 그들의 자취를 잘 다스렸고, 이들을 적발하는 게 귀신 같았고, 장물 증거가 발견되면 비록 적더라도 용서치 않았다.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았으니 이로 말미암아 도적들이 서로 경계해 그 마을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한다. 그런데 정사와 야사에서 전하는 결론이 조금 다르다.

정권교체 후 시작된 적폐수사가 무르익으면서 예상치 못했던 범죄 혐의가 드러나고, 더불어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국정원 수사방해다. 2013년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댓글 수사팀 압수수색에 대응한 국정원의 가짜 사무실 설치와 재판에서 피의자(국정원 직원) 위증교사가 드러났고, 검찰수사를 기만하는 과정에 당시 국정원 파견검사들이 개입 또는 주도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함께 불거져 나왔다. 전례 없는 일이다. 당시 국정원 감찰실장을 지냈던 현직 지검장이 소환 조사 뒤 구속됐고, 변호사 출신의 국정원 직원과 국정원 법률보좌관이 1주일 간격으로 자살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책임질 위치에 있었고,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당장 알 수 없고, 또 두 사람에 대한 수사 필요성이 사라진 이상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여러 뒷말이 나왔다. 명예를 건드린 망신주기 수사가 있지 않았느냐는 말부터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 지휘하는 국정원 적폐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파견검사가 투신 사망 이틀 뒤 적폐수사를 지휘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의 면담에서 “국정원 관련 수사에서 사건 관계인의 인권을 더 철저히 보장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여 진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이금로 법무차관도 국회에서 수사방식과 관련해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검찰총장이 수사 지휘자에게 내린 주의조치를 언론에 공개하는 게 드문 경우를 감안하면 ‘거친 수사기법’ 문제는 물론 검찰 안팎에 준 심리적 충격과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사실 국정원 수사방해는 국정원이 벌인 숱한 불법적인 정치공작에서 파생한 곁가지다. 국정원 10년 적폐가 어디까지 넓고도 깊게 뻗쳤는지 가늠 못할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국정원 개혁위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 칼날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미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목전에 이르렀다. 전전 정부까지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수사 범위와 규모에 반발과 음모론이 뒤따르는 것은 이상할 일도 아니다. 민주적인 질서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국가기관, 특히 정보기관의 범죄행위, 당시 대통령, 정권 수뇌부의 불법적인 관여여부를 조사하는 일은 수사검사로서는 평생에 흔치 않을 ‘거악 수사’로 대의와 명분 있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게 양해되는 시대가 아니다. 검찰은 외과수술식 수사를 요구받는다. 먼지떨이 수사라는 검찰권 남용에 대한 반작용이다. 그러나 수사는 외과수술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환부, 병소를 도려내는 과정에 생기는 부작용ㆍ후유증이 오히려 더 부각되는 경향 때문이다.

김담과 가깝게 지냈던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은 김담의 지방관 시절을 두고 백성들은 편안하였으나 잘못 죽인 사람도 많았다고 썼다. 그는 이를 두고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라고 평했다. 서거정의 한문수필집 필원잡기에서 전하는 얘기다. 어쩔 수 없이 정치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전 정부 시절 적폐사건이 장인의 예술에 가깝게 다뤄지지 않는다면 역사 발전에 기여할 긍정적인 면보다는 훗날 동티부터 걱정할 판이기 십상이다. ‘정치보복’이라는 말이 무성하고, ‘두고 보자’는 이가 많을수록 더 정치(精緻)하게 처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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