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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출동 하루 100회…홍대 밤거리는 여전히 ‘주폭일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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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출동 하루 100회…홍대 밤거리는 여전히 ‘주폭일번지’

입력
2017.07.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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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만남ㆍ헌팅 앞세워 호객행위

참사 벌어진 클럽도 긴 대기줄

홍대놀이터 앞 거리는 온통 술판

취객들은 무단횡단 무법천지

성추행ㆍ폭행 시비 끊이지 않아

새벽 2시~6시 전쟁터 방불

경찰이 지구대로 데려온 주취자를 끌어내리고(왼쪽사진) 차량에 묻은 토사물을 닦고 있다.
경찰이 지구대로 데려온 주취자를 끌어내리고(왼쪽사진) 차량에 묻은 토사물을 닦고 있다.

15일 오전 3시30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한 클럽.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박모(23)씨는 지인 생일파티를 위해 찾은 이곳에서 난동을 부렸다. 박씨가 마구 휘두른 깨진 소주병과 주먹에 생면부지 손님 14명이 피를 흘리고,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주량을 초과해 마셨다”는 게 그가 밝힌 단 하나의 이유. 공무원 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살인미수 등 혐의를 받는 범죄자라는 꼬리표만 남게 됐다. 그의 ‘불금(불타는 금요일)’은 그렇게 잔혹하고 허망했다.

관련기사 ☞ ‘홍대 클럽서 흉기 난동 부린 20대 구속’

박씨 난동 일주일 뒤인 지난 21일 밤. 홍대 인근 거리는 여전히 밝고 화려했다. 사건이 있었던 클럽 앞에는 100명이 족히 넘어 보이는 젊은이가 건물을 빙 둘러 줄 서 있었다. “기다려서 언제 노냐” “다른 데 가서 놀자”라며 몇몇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즉석만남’이나 ‘헌팅’을 내건 또 다른 클럽 앞엔 어김없이 대기 줄이 늘어섰다. ‘혼자 왔다 둘이 가는 곳’ ‘헌팅 메시지 전송 가능’ 같은 문구가, 경광봉을 들고 “물 좋다” 호객하는 직원들이 오가는 젊은이들을 유혹했다. 음주와 가무를 동시에 즐기고,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이런 곳은 “분위기에 휩쓸려 술을 과하게 마시기 일쑤인 곳”이자, “한번 사건이 났다 하면 크게 번지는 곳“이기도 했다.

거리엔 술판이 한창이었다. 그야말로 ‘거대한 술집.’ 대형편의점 앞에 깔린 수십 개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고, 착석한 대부분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테이블 옆 바닥에 앉거나, 길을 걸으며 술을 마시는 사람도 상당수였다. 맥주부터 소주, 막걸리까지 주종도 다양. 6개월째 편의점 야간근무를 한다는 아르바이트생은 “여름이 되면서 길거리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며 “특히 외국인 손님들은 (길거리에서) 소주 마시는 것 자체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홍대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홍익어린이공원도 마찬가지. ‘어린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공원은 취객으로 가득했다. 독한 술과 주스, 콜라를 섞은 알코올 음료를 파는 좌판까지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원 바닥과 벤치, 문 닫은 노점 좌판 등엔 빈 병들이 굴러다녔다. 한 노인은 공원 옆에 수레를 세우고 빈 병을 누구보다 빨리 주웠다.

불법 전단으로 가득한 거리.
불법 전단으로 가득한 거리.

거리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등 일상의 규칙과 약속은 깡그리 무시됐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하며 당당하게 손을 들어 차를 세우는가 하면, 길거리 불법 주차 차량들 사이에서 튀어 나와 사고가 날뻔하는 아찔한 장면도 여러 차례 연출됐다. 오전 1시를 넘어서자 귀가를 위해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차도 한 가운데까지 진출했다. 바닥은 저녁부터 무차별 살포되기 시작한 전단으로 뒤덮인 지 오래. ‘호스트바’ ‘섹시걸’ 등 낯뜨거운 단어와 사진으로 가득 채운 전단이 시선을 어지럽혔다.

무질서는 종종 사건사고로 마침표를 찍곤 한다. 이곳을 관할하는 홍익지구대에서만 지난해 경찰이 출동한 사건·사고가 3만3,293건, 하루 평균 100번은 출동한다는 얘기다. 이날 야간근무를 지휘한 이정봉 1팀장은 “서울 시내 지구대∙파출소 중 유일하게 3만 건을 넘겼다“며 “성추행과 폭행이 가장 많은데 자정부터 긴장하기 시작해 오전 2시부터 6시까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21일 오후11시 50분쯤 한가했던 홍익지구대(왼쪽사진)가 밤이 무르익으며 사건사고에 연루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21일 오후11시 50분쯤 한가했던 홍익지구대(왼쪽사진)가 밤이 무르익으며 사건사고에 연루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실제 자정을 넘어 새벽 2시가 다가오자 의식을 잃은 취객들이 연이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구대 왼쪽에 미리 깔아둔 매트리스 위에 눕혀졌다. 거리에 널브러진 취객을 데려오고, ‘똑바로 누워 자다 구토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경찰차와 지구대 바닥에 쏟아놓은 ‘흔적’을 치우는 일련의 일이 모두 경찰 몫이다.

취객들 반대쪽 탁자와 벤치에선 피해자 피의자 조사가 한창이다. 거리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만진 혐의로 체포된 미군 두 명, 클럽에서 시비가 붙은 여성들, 다른 클럽 입장권으로 들어가려다 제지 당하자 직원을 폭행한 외국인 남성. 28년 경력을 자랑하는 한 고참 경찰은 “이게 홍대 앞 거리의 실상”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날과 다음날 지구대에 접수된 신고는 300여건. 홍대 앞 젊은이들 거리에는 그렇게 아침이 밝아왔다.

글ㆍ사진=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22일 새벽 문닫은 노점 좌판 위에 놓인 술병들(왼쪽사진)과 깨진 채 굴러다니는 맥주병.
22일 새벽 문닫은 노점 좌판 위에 놓인 술병들(왼쪽사진)과 깨진 채 굴러다니는 맥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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