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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끝난 가파도… ‘나만의 휴식’은 요즘이 적기

입력
2017.05.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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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보리가 익어가는 가파도
누렇게 보리가 익어가는 가파도

요즘 가파도는 온통 황금빛 물결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푸름을 간직했던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18만여 평의 너른 들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보리밭이 장관이다. 완만한 지형 때문에 별다른 볼거리가 없던 가파도는 보리밭으로 유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부터 청보리축제가 열려 수많은 관광객들이 보리밭 사이로 이어진 오솔길을 걸으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 가는 것이다.

가파도는 모슬포항에서 5.5㎞ 거리에 위치한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섬마을이다. 국토 최남단 마라도로 가는 길목, 배를 타고 가다 보면 파도에 휩쓸릴 것만 같은 섬이 곧 가파도다. 실제로 가파도라는 이름 역시 파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당초 이 섬의 이름은 ‘더우섬’이라 했는데, 이는 ‘더누섬’의 변형으로 파도에 파도가 더해지는 의미라고 한다. 한자로는 파도가 덮친다는 의미인 개파도(蓋波島)라 표기했다가 훗날 더할 가파도(加波島)로 바뀌었다.

사람이 살기 전 이곳은 목장으로 먼저 이용됐었다. 성종실록에는 1491년 가파도에서 3마리의 좋은 말이 배출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목장을 설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1780년 제주읍지에는 별둔장을 설치하고 소 103두를 기르는데 목자 8명이 관리했다고 적었고, 1793년 제주대정정의읍지에는 소 75마리를 기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1840년에 영국 배 2척이 이곳에 정박, 포를 쏘고 소를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목장을 폐쇄하고 개간과 경작을 허락하면서 사람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가파도 개경(開耕) 기념비에 의하면 1842년 허가 받은 상ㆍ하모슬리 주민들이 왕래하면서 개간 경작하기 시작했고, 1863년 소와 쟁기로 밭을 가는 영농법이 도입되면서 주민이 살기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파도에 휩쓸릴 듯 낮은 섬 가파도
파도에 휩쓸릴 듯 낮은 섬 가파도
청보리축제가 끝나고 더 한산해진 가파도 보리밭 사잇길
청보리축제가 끝나고 더 한산해진 가파도 보리밭 사잇길
청보리축제가 끝나고 더 한산해진 가파도 보리밭 사잇길
청보리축제가 끝나고 더 한산해진 가파도 보리밭 사잇길
보리를 말리고 있는 주민
보리를 말리고 있는 주민

현재는 상동과 하동 두 개의 마을에 3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섬의 면적은 0.87㎢, 해안선 길이가 4.2㎞이다. 경지를 보면 논은 아예 없고 밭 67.4ha, 임야 153.5ha이다. 주요 농산물은 고구마와 보리인데, 가파도 보리농사는 식량 확보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지금은 청보리축제가 열리며 많은 이들이 찾는 섬이지만, 예전에는 보리 들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기에 제주도의 다른 섬들과 달리 개발의 손길이 크게 닿지 않았다. 가파도 올레길이 2010년 3월 첫 선을 보였다지만 청보리축제 기간이 아니면 많은 이들이 찾지도 않는다.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 올레꾼들에게는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만끽할 수 있는 ‘휴(休)의 길’로 통한다. 걷기 위한 길이라기보다는 휴식의 의미를 되새기는 길이다.

제주도의 곳곳이 개발 바람 앞에서 원형을 잃어가고 있기에 가파도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최근에는 탄소제로 섬, 지속가능한 녹색 섬으로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실제로 2010년 7월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하는 ‘누구나 가고 싶고 찾고 싶은 명품 섬 베스트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친환경 명품 섬임을 확인한 것이다.

여타의 섬들이 관광객들로 북적이며 고유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 가파도는 자기만의 휴식을 취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섬이다. 그것도 청보리축제 탐방객으로 혼잡한 4월보다는 한적함을 주는 요즘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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