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장정일 칼럼]피가로가 이혼하게 된 사연

입력
2016.02.05 14:00
0 0

1781년에 초연된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문예출판사,2009)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의 대본으로 유명하지만, 5년 뒤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견인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초야권을 내세워 자신의 아내가 될 수잔느의 정조를 빼앗으려는 알마비마 백작에게 대항하는 피가로의 고군분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주의 권리를 내세워 자신에게 소속된 하녀의 처녀성을 빼앗으려는 알마비바 백작의 음험한 공세 앞에서, 하인 피가로는 이렇게 울분을 토한다.

“백작 당신이 수잔느를 가질 순 없어. 안 되지. 당신이 성주라 해서 그럴 자격은 없어. 귀족, 재산, 지위, 신분, 그런 것이 당신을 자만하게 만들었지. 그것을 얻으려고 당신은 무엇을 했단 말이오. 세상에 태어나려고 당신 어머니 배만 아프게 했고, 나와서 운 것밖에 더 있소. 아비도 모르고 태어나 불량배에게 도둑맞고 그 놈들 소굴에서 자라다 거기서 도망 나와 정직하게 살려니 도처에서 밀어젖히고! 어느 신이 나에게 이런 괴로움을 준 것일까.”

꾀 많은 수단꾼인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의 집요한 방해 공작을 물리치고 수잔느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보마르셰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신혼부부에게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으로 작품의 막을 내렸다. 이때 수잔느가 불렀던 “자, 이성이여 우리가 그릇된 길에서/ 마음대로 놀더라도/ 결국 이성의 길로 다시 인도해주소서”라는 노래 가사 속에는 이성에 대한 무구한 신뢰를 특징으로 하는 계몽주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축복과 낙관 가운데 결혼을 하게 된 피가로와 수잔느는 설화나 동화의 후렴구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1937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폰 호트바트는 ‘피가로 이혼하다’(지식을만드는지식, 2013)는 이런 짓궂은 의문에서 출발한다.

피가로가 예언했던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알마비바 백작과 백작부인은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망명한다. 수잔느는 충성심에서 백작 내외를 따르고, 6년째 부부로 살아온 피가로 역시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혁명을 배반한다. 혁명이 곧 끝날 거라고 낙관한 백작 내외는 호화 호텔과 카지노를 전전하면서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상황 판단에 능한 피가로는 9년 동안 모셨던 주인과 작별한다. 이후 피가로는 미용실(이발소)을 차려 돈을 벌게 되는데 그의 성공 비법은 별 게 아니다.“고객을 끌어 모으는 것보다 고객을 다시 잃지 않는 것만큼 더 큰 기술은 없어, 여기에는 일류 면도나, 머리 손질뿐만 아니라, 그 어떤 외교적이고 심리적인 요령이 중요하다고. 고객을 인간적으로 대하면서 말이야,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판단에 동조하고, 허영심을 부추기고, 걱정을 함께 나누고, 질문에 대답하고, 그들이 웃으면 웃고, 울면 울고….”수잔느는 그런 남편을 향해 “당신은 속물이야, 내 피가로는 세계시민이었고! 그는 남자다웠어”라는 비난을 퍼붓고 피가로의 곁을 떠난다.

호르바트는 결혼 전에 자칫 백작의 노리개가 될 뻔 했던 수잔나가 단골 손님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이 작품을 통해 왕이나 귀족이 없어지는 것으로 권력 관계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탄압하는 권력이 없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권력은 왕과 귀족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인(시민)들 관계 안에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피가로의 자유는 단 한 사람의 백작에게 굽실거리는 것에서, 동료 시민들 모두에게 굽실거리는 허울 좋은 자유로 확장 됐다. 왕권이 무너진 부르주아 세계는 만인이 만인에게 바치는 감정노동의 격전장이 된 것이다.

‘피가로의 결혼’의 핵심을 차지하는 초야권(初夜權 ? droit de cuissage)은 영주가 농노의 결혼 첫날밤을 차지하는 권리라고 한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로 워낙 널리 알려진데다가, 멜 깁슨이 연출한 ‘브레이브 하트’가 똑같은 주제를 다시 퍼트린 까닭에 한국에서는 중세 유럽에 그런 악습이 실재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김응종의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푸른역사, 2005)는 중세 유럽을 몽매와 야만의 시대로 보려는 계몽사상가들의 상상이 만들어 낸 개념이 초야권이라고 한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