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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법부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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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법부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입력
2018.06.03 18: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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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무법 변호사’ ‘검법남녀’ ‘슈츠’.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이다. 수년 전부터 법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조금씩 늘고 있지만, 최근에는 각 방송사의 주요 시간대를 장악하고 마니아층도 확대되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소재의 현실성 등 의견이 분분하다. 촛불집회를 통해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눈을 뜨게 되면서 권리 실현의 주요 수단인 사법시스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등 설득력 있는 설명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현상과 함께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카타르시스 작용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각국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총 42개 국 중 39위였다. 국민 교육수준이나 민도가 높아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볼멘 항변도 있지만 똑똑한 국민을 둔 나라라면 그에 걸맞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법조계가 할 일이다. 결국 국민들은 사명감 있는 검사, 소신 있는 판사, 공공성을 잃지 않는 변호사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지금까지 드라마 속 판사는 부정적 이미지의 검사에 비해 신중하고 신뢰할만한 인물로 묘사됐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을 깨버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의혹을 해명했지만, 특별조사단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이 재판의 공정성을 심히 의심할만한 행위를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상고법원 등 상고제도의 개선 필요성에도 불구, 이를 위해 정치권력에 기대려 했던 사법부의 우(愚)는 너무 크다. 비슷한 시간, 필리핀 대법원장 세레노는 대통령의 초법적 행위에 당당하게 맞서다 명예롭게 탄핵 당하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오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외쳤다.

몽테스키외는 입법, 행정, 사법이 분리돼 상호견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권력을 가진 자는 반드시 그것을 남용한다고 보았고, 3개 권력이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고안했다. 이 중 사법은 입법권과 행정권의 남용을 재판을 통해 견제한다. 사법부를 자유의 마지막 보루라고 부르는 이유이며, 그래서 우리는 특별히 헌법에 사법부의 독립을 명시했다. 그런데 그 독립성이 제왕적 대법원장과 사법 관료화를 옹호하는 방패로 전락해 버렸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들도 의혹이 해소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조사단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정보공개청구소송을 한다고 하지만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사법부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시간에 기대어 잊히길 바란다면, 사법부는 신뢰에 영원히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더 조사를 진행한다면 사법부 권위가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대통령에서부터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자유를 침해했다면 어떠한 성역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의 권위보다 국민의 자유가 훨씬 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위는 상대방이 스스로의 이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이며, 권위주의는 그 이성에 반하여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사법부가 지켜야 하는 것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권위다. 이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사법부는 국민 스스로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있도록 자발적 개혁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 옷은 주권자인 국민이 사법부에 위임한 임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부장판사가 초임 판사에게 법복을 입혀주며 한 말이다. 여기에서 국민이 위임한 임무는 바로 공정한 재판이며 이는 사법부의 존재가치다. 의혹 해소에서부터 사법부가 스스로의 가치를 지킴으로써, 드라마를 통한 대리만족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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