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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 리포트] "도박은 병, 폐쇄하라" "합법인데 나가라니" 1500일의 싸움

입력
2017.06.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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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로에 대출광고ㆍ불법 오락실

재작년 개장 후 동네환경 변해

추방대책위 주말마다 반대집회

부천ㆍ대전ㆍ김포서도 주민과 갈등

경마산업 매출의 70% 차지

마사회는 완강하게 운영 고수

“사행산업 폐해가 이득의 4배”

도박의 사회적비용 지적 나와

2014년 1월부터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의 천막.
2014년 1월부터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서울 용산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원회의 천막.

“도박은 병입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폭염특보가 내려진 17일, 뙤약볕 아래 모인 학부모들이 한 건물로 들어서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이들은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서울 용산구 청파로 52번지, ‘용산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한국 마사회의 렛츠런 문화공감센터(CCC) 앞에서 주말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청파로 건너편 200m 인근에는 성심여중ㆍ고, 원효초교 등 학교와 주택가가 몰려있다. 이들 학교의 학부모와 교직원들로 주로 구성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추방대책위(추방대책위)’가 화상경마장 폐쇄를 촉구하며 반대운동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1,500일이 넘었다.

2001년 용산역 근처에 개장했던 용산 화상경마장은 시설낙후 등을 이유로 2010년부터 청파로 이전이 추진됐다. 마사회는 지상 18층, 지하 7층 규모의 화상경마장을 2013년 완공했으나, 이 건물의 정체를 안 주민들은 교육ㆍ생활환경 훼손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다. 주민들은 추방대책위를 발족, 화상경마장 옆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고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직접 중재에 나서는 등 정치권과 시민단체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2015년 5월 용산 화상경마장의 영업을 시작했고, 양측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성심여고와 용산중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정방 추방대책위 공동대표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이 소식을 널리 알리기만 하면 금방 해결될 줄 알았다”면서 “이렇게 싸움이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고 전했다.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 후 한적하고 조용했던 동네 환경도 변했다. 일수와 대출 광고지들이 주택가와 통학로에 뿌려졌고, 근방에는 화상경마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타깃 삼아 불법 오락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화상경마장을 이용하는 지역주민들도 점점 늘어나 ‘아는 사람이 왔다’고 추방대책위원들끼리 서로 귀띔하는 일도 잦아졌다. 성심여고에 재학 중인 이모(18)양은 “전에는 용산역 앞에 있던 술 취한 아저씨들이 집과 학교 근처에서 보여 (화상경마장이 영업하는) 주말에는 집에 일찍 들어가는 편”이라고 전했다. 정 공동대표는 “용산 화상경마장의 이전이 아니고 폐쇄를 요구한다. 이전이라는 건 또 다른 주거지를 파괴하는 일”이라며 “우리 집 앞이라 안 되는 게 아니라, 도박 시설이 주거지 안에 들어오는 건 어디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마사회 측 역시 완강하다. 3차례의 주민 간담회를 거치고 각종 법적 절차를 준수한 사업인 만큼 정서적 반감만으로 철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병춘 마사회 홍보부장은 “모든 것이 적법하게 이뤄진 부분인데 대안 없이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맞섰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2010년 6월 용산구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았고, 이전 승인은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냈다. 또 학교보건법에 학교로부터 200m 이내는 화상경마장을 설치하지 못하게 돼있으나, 용산 화상경마장에서 제일 가장 가까운 성심여고는 215m 거리에 있다. 마사회 측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입장이다. 애초 건물의 전 층(약 5,000석)을 운영하려던 계획에서 한 발 물러서 5개층(574석)만을 개장하고 있고, 1층부터 7층까지는 사회공헌사업 차원에서 초대형 키즈카페의 개장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주민들은 “기껏 사회공헌사업이 하필이면 키즈카페냐. 아이들 정서에 악영향을 주지 않겠느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용산뿐 아니라 화상경마장은 전국 곳곳에서 지역주민과의 마찰을 빚고 있다. 경기 부천의 화상경마장은 주민들의 끈질긴 반대에 2020년 폐쇄를 앞두고 있고, 대전 월평동에서도 외곽 이전이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 화상경마장 신설을 추진하려던 경기 김포에서는 결국 사업동의가 취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회가 화상경마장을 늘리는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다. 마사회 수입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경마산업(98.9%) 매출의 약 70%는 전국 31개의 화상경마장에서 나온다. 지자체들 역시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돈 욕심에 화상경마장 유치에 나서고 있다. 마사회는 연 매출 중 10%는 레저세로 납부하고 있고, 이 레저세는 화상경마장 소재 지자체가 절반을 가져간다. 지난해 레저세는 약 7,800억원에 달했다. 마사회는 이를 근거로 경마산업이 세수 증대 및 농어촌 복지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마사회의 주장은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5년 펴낸 ‘도박범죄의 사회적 비용추계 연구’에 따르면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한해 약 25조원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전체 사행산업 규모가 22조원인 것에 비하면, 중독자들의 낭비 비용과 정신적 피해 비용, 도박중독 치료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이 더 큰 셈이다. 전종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도박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연 78조원으로 추산하고 있기도 하다. 전 교수는 “국내총생산(GDP)의 7.3%에 해당하는 수치”라며 “사행산업으로 인한 폐해가 이득의 4배 가까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글ㆍ사진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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