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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가치를 대변… 美 “최고 애국자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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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가치를 대변… 美 “최고 애국자를 잃었다”

입력
2018.08.26 09:52
수정
2018.08.26 20:5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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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케인 美 상원의원 별세

‘베트남 포로’ 전쟁 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35년 활동

지난해 뇌종양 판정 후 투병

끝까지 사이 나빴던 트럼프는

장례식에 초청 못 받을 수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5일(현지시간) 82세로 숨진 미국 공화당의 원로 정치인 존 매케인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의 삶은, 5월에 출간한 그의 회고록 제목 ‘쉬지 않는 파도’가 보여주듯이 투쟁의 연속이었다. 해군 폭격기 조종사에서 전쟁 포로로, 미국 보수의 이단아(maverick)에서 공화당 대선후보로, 다시 상원의 최고 원로이자 정치권의 거인으로 우뚝 섰다.

매케인 의원은 조부와 부친이 모두 해군 대장인 해군 집안 출신이다. 태어난 곳도 1936년 당시 미국령이었던 파나마 운하 해군기지였다. 매케인 자신도 직업군인의 길을 택해 미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소속 폭격기 조종사가 됐다. 1967년 북베트남 상공에서 격추된 후, 하노이에서 전쟁 포로로 5년 반을 보내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1968년 부친 존 매케인 주니어가 태평양사령관으로 부임한 후, 북베트남 정권은 선전 목적으로 포로 상태였던 매케인 혼자에게만 조기 석방을 제의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다른 포로를 먼저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고, 이후 가혹한 고문을 감내해야 했다.

1973년 석방된 매케인은 장기간의 치료와 재활 끝에 해군에 복귀했다. 전쟁 영웅으로 유명세는 얻었지만, 큰 부상 때문에 더 이상 군인으로서의 기회는 없다는 것을 알고 1981년 대령으로 은퇴했다. 복무 기간 막바지 미국 상원의 해군 연락 담당자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뜻을 두게 됐고, 1983년 애리조나주 연방하원의원으로 임기를 시작하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986년에는 상원으로 옮겨 당선된 이래 2016년까지 내리 6선하며 총 35년간 미 연방의회에 몸담아 왔다. 다만 대권에는 이르지 못했다. 200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했으나, 미국 43대 대통령이 된 조지 W. 부시에 패했다. 2008년에는 당내 경선은 통과했지만, 금융위기라는 악재 속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대결해 패했다.

정치인 매케인은 미국 보수의 가치를 대변했다. 경제정책 부문에선 자유지상주의를 옹호했고 대외정책에서는 철저한 매파였다. 그러나 항상 공화당 주류의 편에 서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단아’의 길을 걷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와의 관계는 ‘선의의 경쟁’의 표본이었다. “버락 오바마는 아랍인”이라는 지지자의 발언에 매케인 의원은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훌륭한 미국인이다. 나와 그는 정책에 이견이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로써 그는 명예로운 패자로 남았다.

반대로 공화당의 새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는 끝까지 껄끄러웠다. 지난해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 국제 자유무역체제를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5월 발간한 회고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자를 찬양하고 미국이 수호해 온 인권 가치에 무관심하며 난민을 모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은 미국인의 적”이라는 발언에도 “언론의 입을 닫는 것은 독재자가 맨 처음 하는 짓”이라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2017년 7월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고 워싱턴을 떠나 애리조나주에서 요양했지만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민주ㆍ공화 양당에 “대안을 찾아 합의하라”고 쓴소리를 날렸고, 12월에는 공화당의 감세 법안에 지지 의사를 밝혀 통과에 기여하기도 하는 등 병중에도 정치에 헌신했다. 24일 그는 “평소와 같은 힘과 의지로”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고, 하루 만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회고록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굉장한 여정이었다”라며 “세상을 뜨는 것은 싫지만 삶에 불만은 없다”라고 적었다.

매케인 의원의 사망 소식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상에 대한 신의는 공유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고 부시 전 대통령도 “깊은 신념에 찬 인물이자 최고의 애국자”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로 “깊은 연민과 존경을 표시한다”고 애도했지만, 장례식에는 초청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매케인 의원은 생전에도 자신의 장례식에 트럼프 대통령 대신 마이크 펜스 부통령 참석을 원한다는 뜻을 밝혀 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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