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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너머 이야기 담아… 퀴어보다는 성장 영화에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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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너머 이야기 담아… 퀴어보다는 성장 영화에 가까워”

입력
2018.02.26 18: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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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들의 동성연인 관계 담아

부산영화제 관객상 받은 ‘환절기’

감독 이동은ㆍ주연 이원근 인터뷰

영화 ‘환절기’의 주연배우 이원근(왼쪽)과 연출자 이동은 감독은 “평소 좋아하는 영화 취향까지 서로 닮았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영화 ‘환절기’의 주연배우 이원근(왼쪽)과 연출자 이동은 감독은 “평소 좋아하는 영화 취향까지 서로 닮았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무뚝뚝한 아들이 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조용하지만 살가운 그 아이가 아들처럼 반가웠다. 두 아이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며 소중한 순간을 함께했다. 엄마에겐 아들이 둘인 듯했다. 그날의 교통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아들은 식물인간이 돼 누워 있다. 절망 속에 희미한 희망을 긷고 있던 어느 날 아들의 카메라가 오랜 비밀을 꺼냈다. 아들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 아이가 사실은 친구가 아닌 연인이었다고.

영화 ‘환절기’(22일 개봉)는 퀴어 소재를 다루지만 동성 연인의 이야기가 아닌, 아들 수현(지윤호)을 사이에 둔 엄마 미경(배종옥)과 아들의 연인 용준(이원근)의 ‘관계 변화’를 담담하게 그려간다. 따뜻한 겨울로, 쌀쌀한 봄으로, 환절기엔 같은 시간도 저마다 다른 풍경으로 기억되듯, 서로 다른 마음의 계절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마치 미열이 품은 통증처럼 저릿하고 아련하다.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함께 마주한 이동은(40) 감독과 주연배우 이원근(27)은 그 통증을 2년째 기분 좋게 앓고 있었다. 명필름랩(명필름영화학교) 1기 졸업작품으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상까지 받았던 영화이지만 개봉이 늦어졌다. “영화를 다시 보니 행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배종옥 선배님과 먹었던 된장찌개 맛까지도요.”(이원근)

영화 ‘환절기’는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보살피며 아들의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는 중년 여성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명필름랩 제공
영화 ‘환절기’는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보살피며 아들의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는 중년 여성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명필름랩 제공

용준은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어머니는 죽고 연인은 사고로 누워 있는 상황에서 위태롭게 삶을 지탱하는 인물. “낯을 가리고 외로워 보이는 용준이 저랑 참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기회를 놓칠까 불안해서 빨리 출연 확정해 달라고 소속사를 졸랐어요.” 이 감독은 그 마음을 고마워했다. “제가 쓴 이야기이지만 원근씨가 용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더라고요. ‘이원근의 용준’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다. 편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용기가 필요한 선택은 아니었다. “용준과 수현은 특별하지 않아요. 특별하게 보려는 시선이 있을 뿐이죠. 평범한 연인처럼 연기했어요.”(이원근)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공존해요. 비율에 비해 영화가 덜 다뤘던 거죠. 저는 성소수자 문제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이 감독)

청춘스타가 아닌 “한결 같은 사람”을 꿈꾸는 이원근.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청춘스타가 아닌 “한결 같은 사람”을 꿈꾸는 이원근.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그래서 ‘환절기’는 퀴어영화라기보다 성장영화로 읽힌다. “자신의 본 모습을 받아들이거나 비워내는 것도 성장이에요. 미경은 식물인간 아들뿐 아니라 아들의 연인, 남편과의 이혼 등 복합적인 상황에서 변화를 겪어요. 용준도 잔인한 환경에서 마치 생존하듯 삶을 살아가죠. 용준에겐 그 자체가 성장이에요.”(이 감독)

카메라는 인물의 감정에 끼어들지 않고 관찰한다. 이원근은 말간 얼굴에 용준의 슬픔을 숨긴다. 이 감독은 “일생에 한번 겪기도 힘든 사건들이라 거리를 두려 했다”며 “관객이 조금 쉬어갈 수 있는 영화,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화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래서 ‘관계의 성숙’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은 관객에겐 새로운 시작이다.

충무로에 희귀해진 ‘작가주의 감독’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겠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충무로에 희귀해진 ‘작가주의 감독’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겠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 감독은 조금 특별한 여정을 거쳐 ‘환절기’에 다다랐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기업과 영화사 등에서 일하다 시나리오 ‘당부’로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 시나리오로 만든 두 번째 영화 ‘당신의 부탁’도 4월 개봉한다. “캐릭터의 매력과 연기하는 보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원근은 다음달 8일 새 영화 ‘괴물들’로 돌아온다. ‘그대 이름은 장미’와 ‘명당’도 올해 개봉한다.

‘환절기’를 지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앞둔 두 사람은 어떤 계절을 꿈꿀까. “신인감독 연출에 독립영화인데도 선뜻 출연해준 배우들에게 고마워요. 지금처럼 꾸준히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이 감독) “배우이기 전에 늘 한결 같은 사람이고 싶어요. 첫 마음이 변치 않을 수 있다는 걸 꼭 보여드릴 거예요.”(이원근)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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