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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통일연구원장 “북한이 CVID 거부했다고 비핵화 거부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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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통일연구원장 “북한이 CVID 거부했다고 비핵화 거부한 건 아니다”

입력
2018.06.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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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미의 비핵화 목표는 같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14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에서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미의 비핵화 목표는 같다”고 강조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북한이 단번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백기를 들고 나오라는 건 과거의 강압적인 시각”이라며 “북미가 동등하게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주고 받는, 비핵화를 위한 진정한 협상에 돌입했다”고 평가했다. 14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통일연구원에서 가진 본보 인터뷰에서다.

또 불가역적이라는 강제적 개념이 내포된 CVID에는 북한이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합의문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절한 체제보장 방안에 합의가 이뤄지면 여전히 북한의 핵ㆍ미사일 선반출(이른바 프론트 로딩)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김 원장은 북한이 여전히 믿을 수 있는 협상 상대인지에 대한 일각의 회의적 시각에 대해서도 “신뢰는 협상의 조건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만들어낼 결과”라고 일축했다. 국제 외교에서 믿을 수 있는 대상과는 협상할 필요가 없으며, 믿기 힘든 대상과 신뢰를 쌓아나가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 그것이 협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쌓은 신뢰가 향후 북한의 비핵화 속도를 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남북 회담 경험을 쌓았던 김 원장은 지난 4월부터 국가 통일정책 수립을 관장하는 국무총리실 산하 통일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_북미 정상회담을 평가하자면.

“이제서야 북미 간 협상이 시작된 거다. 동등한 위치에서 주고 받는 진짜 협상의 틀이 시작됐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대 시기의 개념을 갖고 협상을 바라본다. 이른바 강(미국) 대 약(북한), 북한이 백기를 들고 나와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방법으로는 비핵화에 이르기 어렵다. 이번 합의문은 신뢰구축을 통해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본질적인 성격과 이행의 전망에 대해 규정한 문서다. 과거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핵무기는 결국 관계가 변화하며 해결된다. 때문에 비핵화를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만남 자체로도 큰 의미다. 1986년 냉전 종식을 위해 추진했던 미국과 러시아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합의 없이 깨졌다. 하지만 그 회담이 냉전 해체의 시작이며 현대사에 굉장히 중요한 회담으로 기록돼있다. 미국의 레이건과 러시아의 고르바초프가 정말 솔직한 대화를 나눠 신뢰를 만들었기 때문에 1987년 워싱턴 정상회담 등을 통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됐던 거다. 북미도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_합의문에 CVID를 넣지 못했다. 북미 간 비핵화에 대한 생각이 다른가.

“CVID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CVID는 ‘선핵폐기-후보상’이라는 강압적 대북 적대정책의 상징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북한이 CVID를 거부했다고 해서 비핵화를 거부한 게 아니다. 한국과 미국,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다르지 않다. 4ㆍ27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에 관한 남북한의 기존 합의를 존중한다고 했다.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얘기한 거다. 지금껏 있었던 어떤 합의보다 굉장히 엄격한 수준의 비핵화 내용을 담고 있고 판문점선언으로 이어졌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런 판문점선언을 재차 확인했다. 최종 목표로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북미의 방향이 같다는 거다. 정상 간의 합의문은 표면이 아닌 맥락으로 해석해야 한다.”(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달 8일(현지시간) “우리가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_북한이 완강한데 핵ㆍ미사일 선반출(프론트 로딩 방식)은 가능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현재 핵’의 해체에 드는 기술적 시간이 워낙 길다.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문제는 보상이다. 이번 협상은 저울에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올려놓고 무게를 가늠하는 방식이다. 핵ㆍ미사일 선반출을 한 쪽에 얹으면 무게가 급격히 기울기 때문에 그만한 보상을 줘야 한다. 북한도 핵ㆍ미사일 선반출을 못 받겠다고 하는 게 아니다. 북한은 선반출 요구를 받을 수 있는데 그만큼에 해당되는 체제보장책은 뭐냐고 미국에 묻는 거다. 미국이 그걸 제공할 수 있다면 선반출이 가능하다.”

_북미 간 비핵화 시한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상태인가.

“비핵화 시간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술적인 차원의 이행 시간표라면, 다른 하나는 양국 관계의 성격이 바뀌는 시간표다. 이 둘의 시간표는 다를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건 이 두 시간표를 같이 굴리겠다는 뜻이다. 과거엔 실무자들이 기술적인 시간표에만 합의했다면, 이번에는 정상 간 합의와 실무자들의 협상을 번갈아 가면서 진행하는 시간표 합의로, 신뢰구축과 관계개선을 통해 비핵화 속도를 가속화하겠다는 계산인 거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말한 약 2년의 시간표는 양국의 관계가 바뀌는 시간표고 전체 비핵화의 시간표는 훨씬 길 수밖에 없다.”

_한미 연합훈련 중단도 예상치 못했다.

“미국은 압축적인 비핵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기 위해선 압축적인 체제보장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관계 정상화 또는 제재 완화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법률적인 개정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미국이 초기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그럼에도 비핵화에서 뭔가 받기 위해 줘야 한다는 원칙을 트럼프 대통령이 이해한 거다. 한미 연합훈련은 비핵화 협상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면 바로 재개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활용할 만한 가치가 높은 이슈다.”

_관계 정상화와 대북 제재 완화가 연동될 가능성이 있나.

“관계 정상화와 제재 문제는 같은 개념이다. 연락사무소 설치라는 초보적 외교관계 조치를 실행하기 위해선 ‘테러지원국’이라고 하는 제재의 근거를 해소할 수밖에 없다. 적성국, 테러지원국, 인권침해국과는 연락사무소 개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외교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건 적대 시기의 법률을 바꾼다는 의미다. 합의문에는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써있다. 그건 제재 완화를 동반한다는 얘기다.”

_북한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은데.

“신뢰는 협상의 조건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 만들어낼 결과물이다. 현재 북한을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합의 이행 과정에서 불신을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 건지가 향후 중요한 관건이다. 어떤 외교든지 믿을 수 있는 상대와의 협상은 할 필요가 없다. 근본적으로 외교에서 분쟁을 해결할 때 상대를 신뢰하냐 안 하냐의 문제로 치환하지는 않는다.”

_향후 북미관계에 난관은 없을까.

“당장은 폼페이오 장관과 후속회담을 시작하는 등 속도를 내지만 앞으로 난관이 많을 거다. 중간선거 등 미국 내부 정치적인 요소도 영향을 미칠 거다. 그런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 남북관계나 주변국들을 통한 다면관계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이행과정을 유도해야 한다. 여러 겹의 보장 방안이 마련돼야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_북미가 직접 협상하는 국면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한미ㆍ남북ㆍ북미 삼각 관계가 지속적으로 선순환할 수 있도록 역할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합의는 선순환이 멈춰 깨졌다. 한미 간에도 보조를 맞추고 중국의 역할을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한국의 역할은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고 역진을 방지하는 역할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두 번의 정상회담을 포함한 빈번한 남북 접촉이 있지 않았나. 또 남북관계가 결국 한반도 냉전질서의 실질적 양태다. 근본적으로 남북관계가 변해야 냉전질서가 종식된다. 군사적 신뢰구축을 진전시키는 게 비핵화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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