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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진실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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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진실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의 여정

입력
2018.04.13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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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리비아 독재에 맞서 싸운 아버지

카다피 정권에 의해 제거 당해

수십 년 등지고 살던 조국 찾아

부친 흔적 좆던 고통의 경험 담아

작년 퓰리처상 논픽션부문 수상

히샴 마타르. 촬영= 아내 다이애나 마타르, 돌베개 제공
히샴 마타르. 촬영= 아내 다이애나 마타르, 돌베개 제공

“장례식에 담긴 종결의 의미가 부럽다.” 리비아계 영국 작가 히샴 마타르(47)는 토로한다. 차라리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한다는 건, 이런 뜻이다. ①소중한 사람이 인생에서 사라졌다. ②생사조차 모른다. ③길고 긴 시간이 흘렀다. ④어쩔 수 없이, 희망을 잃어 간다. 마타르의 ‘사라진 소중한 사람’은 아버지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에 맞서 싸운 자발라 마타르. 군 장교, 외교관을 거쳐 사업으로 모은 재산을 반독재 투쟁에 쏟아 부은 거물.

1990년 아들 마타르는 아버지 마타르를 잃는다. 망명지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납치된 아버지는 리비아로 끌려가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된다. ‘지옥의 감옥’이라 불린 곳이다. 1993년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몰래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1996년 아부살림에서 정치범 1,270명이 한꺼번에 학살된다. 아버지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다. 아버지는 여전히 어디에도 없다. “자기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를 찾는 일을 멈출 수 없으면서, 동시에 그를 찾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는 고통의 경험을 마타르는 ‘귀환’(돌베개)에 담았다. 책은 지난해 퓰리처상(논픽션 부문)을 받았다.

2011년 2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리비아인들이 벵가지에서 카다피가 쿠데타로 몰아 낸 왕정 시절의 국기를 흔들며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벵가지(리비아)= AP 연합뉴스
2011년 2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리비아인들이 벵가지에서 카다피가 쿠데타로 몰아 낸 왕정 시절의 국기를 흔들며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벵가지(리비아)= AP 연합뉴스

저자는 결국 아버지를 찾아냈을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오직 ‘재회냐, 실패냐’를 향해 달려가는 ‘엄마 찾아 삼만리’ ‘TV는 사랑을 싣고’와 달리, 책의 의미는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 있다. 아버지라는 인간을 알아 가는 여정이자 비극의 역사를 되짚는 여정. 저자는 시간,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이야기를 쌓아 나간다. 책은 절절한 사부곡이자, 성장 문학이자, 역사 다큐멘터리다.

저자에게 아버지는 “산처럼 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트럭에 치여 갈가리 찢긴 낯선 행인의 시신을 경건하게 수습한 사람, 고급 양복을 입고 땅바닥에 털썩 앉아 잡역부와 식사하며 접시 밑에 지폐를 슬쩍 남겨 둔 사람, 유언이 된 편지에 “내 이마는 수그릴 줄 모른다”고 쓴 사람, 시(詩)를 사랑한 사람. 1990년 19세였던 저자는 아버지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1979년 버리고 떠난 ‘또 다른 조국’ 리비아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저자는 뿌리를 찾아 2012년 리비아로 돌아간다. 아부살림 동료 수감자와 친척들의 기억을 끌어 모아 재구성한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저자가 그리워한 건 영웅이 아닌 평범한 아버지였다. “나는 적어도 자기 집에서 서서히 나이를 먹어 가는 아버지처럼, 그런 어떤 행복한 남자가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의 흔적을 좇을수록, 아버지가 1996년 대학살의 날에 ‘제거’됐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저자는 희망을 포기하려는 마음과 싸운다. ‘원수의 아들’인 카다피의 차남 셰이프 알-아랍에게까지 도움을 구하지만 배신당한다. “어떡하든 살아남아라.” 흔들릴 때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책은 끝까지 아버지의 운명을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보낸 오디오 카세트테이프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깊은 구덩이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울음소리”가 슬픈 결말을 암시할 뿐.

귀환

히샴 마타르 지음∙김병순 옮김

돌베개 발행∙344쪽∙1만5,000원

“카다피가 아버지를 빼앗았을 때, 그는 아버지가 갇힌 감방만큼이나 아주 작은 공간에 나를 가둔 것이다. (…) 분노는 독약을 푼 강물처럼 우리가 리비아를 떠난 뒤로 내 삶에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책은 카다피가 리비아를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았는지, 그럼에도 리비아인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의 기록이기도 하다. “내 모든 세대를 대신해서 전투에 나서야 했던 모든 어린 소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좀 더 일찍 승리해야 헸습니다. 그랬다면, 여러분들이 이처럼 죽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안전하게 살아온 망명자’인 저자가 어느 리비아인의 말을 빌어 전한 미안한 마음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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