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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북한 주민들의 숭배

입력
2017.10.15 17:0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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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북한 독재는 희화화하기 쉽다. 1930년대 푸딩 사발 스타일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는 김정은은 고루한 마오쩌둥의 의상과 작고 뚱뚱한 체형 때문에 만화영화의 등장인물과 아주 비슷하다. 공식적으로 전지전능한 천재로 여겨지는 그는 신처럼 숭배 받는다. 그 주위에는 훈장으로 주렁주렁 장식한 고위 군 간부들을 비롯해 항상 발작적으로 웃고, 박수치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 북한에서의 삶은 결코 즐겁지 않다. 주기적으로 들이닥치는 기근은 주민들을 황폐화시킨다. 20만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이 가혹한 노동교화소에서 노예처럼 생활하고 있다. 많은 북한 주민들이 단지 그래야 하기 때문에 김정은을 숭배한다. 자신들의 장점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체제 규범에 동조한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북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김정은에 대한 숭배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모든 숭배(혹은 종교적 신념)가 그렇듯이 북한 주민들의 숭배도 다른 문화, 신념, 전통으로부터 조각조각 모아 짜 만든 것이다. 김정은에 대한 숭배는 상당부분 스탈린주의와 메시아적인 기독교사상, 유교의 조상숭배, 토속적 샤머니즘, 그리고 20세기 전반 한국을 식민지배 했던 일본의 제국주의적 숭배에 맥이 닿아있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백두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은 4,000여 년 전 한국 최초의 민족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신성한 지도자 단군왕검이 태어난 곳이다.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리는 김정일의 탄생은 겨울을 봄으로 바꾸고, 하늘의 밝은 별이 영롱하게 비춘다. 이 모든 것이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신화에 나오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은 예외 없이 다 엉뚱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다는 점이다.

어떤 믿음이 강한 호소력을 갖는 데는 종종 상당한 근거가 있다. 낙오자나 박해 받는 사람들 중에 이슬람이나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종교들이 신의 이름으로 평등함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신앙은 포괄적이지 않다. 그 핵심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적대적인 힘에 대항해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인종적 순수함, 신성한 민족주의적 감정이다.

순교라는 강한 기독교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폴란드처럼, 한국도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갖고 있다. 주로 중국이었지만, 러시아도 있었다. 16세기 일본의 잔혹한 침략 이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미국은 후발주자다. 그러나 북한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감이 생긴 것은 야만적인 한국전쟁에도 원인이 있지만, 외국의 핍박에 대한 오랜 기억 때문이다.

외부세력의 지배로 한국 역사에는 협조와 저항이라는 양극단이 생겨났다. 다양한 한국 왕조에서 일부 지배계급은 외세와 협력했고, 또 일부는 거기에 맞서 투쟁했다. 그 결과는 한국인들 내부의 깊은 반목으로 이어졌다. 김일성은 처음에 외세와 결탁했다. 그는 북한에서 꼭두각시 공산주의 지도자로 스탈린에 의해 간택됐다. 이로 인해 김일성은 2차대전 중 일본에 맞서고, 나중에는 미국에,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남한의 ‘협력자’에 맞서는 전설적인 저항의 영웅이 된다.

‘주체’로 알려진 북한의 민족주의는 정치적인 것만큼 종교적이다. 외세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이뤄진 김씨 왕조를 지키는 것은 신성한 임무다. 그 신성함이 정치를 능가할 때 타협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사람들은 상충하는 이해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있지만,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업에서 신성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은 허풍과 위협, 그리고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공언(2,000만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모는 공언)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다. 국민의 신성한 수호자로서 김정은이 그런 허풍에 굴복할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김정은과 그의 독재 통치의 부하들이 굴복하느니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다. 추종이 자살로 귀결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보다 현실적인 다른 위험도 있다. 트럼프가 적대적인 트위트와 공식적 자리에서 허풍 떠는 언급을 한 뒤에 내각의 고위 참모들의 조심스런 발언이 으레 뒤따른다는 점에서 김정은이 그들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김정은은 아마 트럼프의 말은 모두 허풍이고, 그래서 그런 위협이 결코 실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김정은을 무모한 행동으로 몰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괌으로 미사일을 조준하는 것이다. 이는 같은 종류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준다. 그 결과는 김정은의 신성한 임무를 받드는 북한 주민들뿐 아니라 비무장지대(DMZ)에서 불과 56㎞ 떨어진, 김정은에 대한 숭배와 전혀 관계가 없는 수백만명의 한국 사람들에게도 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언 부르마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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