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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더 없이 자유롭게… “껍데기에 대한 집착 버리자”

입력
2018.05.11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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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 그림책은 대단한 치유력을 품고 있다. 그냥 ‘책’에 비해 좀더 즉물적이랄까. 어떤 상황에서도 금세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을 경험한 이후, 낯선 이에게도 애써 그림책 처방을 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어졌다. 나체 이미지가 유포되고 조롱받은 누드모델이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태라는 뉴스를 접하고 당장 떠올린 것은 조엘 졸리베의 그림책 ‘뼈를 도둑맞았어요’다. 장뤼크 프로망탈이 글을 쓴 이 그림책의 첫 장면은 뾰족 지붕들과 초승달이 그리는 푸른 밤. 그를 배경으로 양쪽 끝에서 각각 등장하는 자전거 탄 해골과 모자 쓴 해골, 흡사 바다 같기도 한 그 밤의 허공에 적힌 텍스트 ‘해골들의 도시/ 오스탕드르/ 해골 1,275명/ 뼈 270,300개’가 웃음 섞인 감탄을 자아내면서 범상치 않은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해골들이라는 것만 빼고는 대체로 우리와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는 이 평화로운 도시에 어느 날 야수가 나타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주민들을 급습해 뼈를 딱 하나씩 훔쳐 달아난다. 해골 탐정 셜록이 피해 입은 시민들 하나하나를 찾아 다니며 야수의 정체를 밝히려 애쓰는 이야기가 검거나 짙푸른 바탕 위의 하얗게 그려진 해골들의 기묘하게 매력적인 이미지로 펼쳐진다. 해골들의 좌충우돌 이미지들이 전복적이고도 매혹적인 데 비해 탐정 스토리는 다소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그마저도 놀라운 반전을 위한 계획된 전략으로 여겨진다. 과학적이고도 정교하게 움직이는 각각의 뼈들, 최소한의 색과 형태만으로도 놀라고 두려워하는 해골의 표정을 풍족히 그려내는 졸리베의 능란하고도 미감 넘치는 조형성 덕분이다.

빈부를 가늠하는 옷과 미추를 따지는 몸 모두를 벗어 던진 채 우리를 이루는 최후이자 최초인 해골, 그 낱낱의 뼈가 상징하는 본질, 야수의 정체와 도둑질의 진실... 이 커다란 책은 명작이 그렇듯 거듭 펼쳐들 때마다 독자를 새로운 시점의 성찰로 이끌면서, 프랑스 작가들이 그리는 셜록과 왓슨의 이미지까지 즐기게 해준다. 커다란 그림책을 덮고 있는 표지 재킷의 안쪽 면에 대형 사이즈 해골이 부위별 이름과 함께 그려진 보너스도 알차다.

보림출판사 제공
보림출판사 제공

뼈를 도둑맞았어요!

장 뤼크 프로망탈 지음∙조엘 졸리베 그림∙최정수 옮김

보림출판사 발행∙48쪽∙2만5,000원

그림책을 읽으면서 만난 키워드나 중심 이미지를 관련 인문서로 확장시켜 누리는 즐거움을 공유하자면, ‘나체의 역사’를 소개한다. 영국의 작가이자 심리학자 필립 카곰은 20여 년 동안 자이나교 · 드루이드교 · 현대 마법 종교 위카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던 중 우연히 들른 영국 최초의 자연주의 리조트에서 뜻하지 않게 자신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게 된다. 더없이 자유로운 해방감의 체험에 이어 누드모델을 서기도 하고, 인도 성지 순례를 다니기도 하면서 깨달은 ‘나체의 기쁨’과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권이 보여주는 나체 관련 인문지식을 수집해 엮은 이 책은 그야말로 인간의 나체란 ‘하나의 육체적 상태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핵심적 요소’라는 사실을 개연성 있게 설파하고 있다.

몸의 일로 상처받은 이에게 해골들의 이야기와 그림이 있는 그림책을 건넨다. 그런 다음 나체 사진이 수두룩하게 실린 ‘나체의 역사’로부터 육신의 ‘본질’을 깨우치는 경험도 나누고자 한다. 그럴 일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늘 겉껍데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유용한 처방이 될 것이다.

이상희 시인∙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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