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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심장과 다리를 가졌지만 메달운이 없었다

입력
2016.07.2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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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보스턴 마라톤을 휩쓴 함기용과 송길윤, 최윤칠.(뒷줄 왼쪽부터) 앞줄 오른쪽이 당시 감독이었던 故 손기정 선생.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60주년 기념집
1950년 보스턴 마라톤을 휩쓴 함기용과 송길윤, 최윤칠.(뒷줄 왼쪽부터) 앞줄 오른쪽이 당시 감독이었던 故 손기정 선생.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60주년 기념집

‘최윤칠. 멧부리(산등성이나 산봉우리의 가장 높은 꼭대기) 윤(崙)에 일곱 칠(七). 세상의 꼭대기에 일곱 번 오르라는 조부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400m 이상 모든 육상 종목을 휩쓴 재능을 가진 그였다. 두 다리와 심장은 당대 최고였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을 가로막은 수많은 불운과 편견들.’

대한체육회가 펴낸 ‘구술로 만나는 대한민국 스포츠인 역사’ 중 불운의 마라토너 최윤칠(88)옹을 다룬 대목이다.

1948년 런던올림픽은 대한민국이 광복 이후 처음으로 출전한 하계 올림픽이었다. 더구나 손기정과 남승룡이 휩쓸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2차대전으로 중단됐다가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라 마라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선수들은 서울을 출발해 부산과 후쿠오카, 요코하마, 상하이, 홍콩을 거쳐 태국, 인도, 이집트를 경유해 런던에 도착했다.

전년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이 강력한 우승후보, 최윤칠은 다크호스였다. 출발 총성과 함께 최윤칠이 선두로 치고 나왔다. 35km 구간까지 독주였다. 금메달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40km 구간 즈음 주경기장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탈수현상이 나타났다. 그는 극심한 경련과 탈수로 결국 경기를 포기하고 만다. 이날 중도에 레이스를 그만둔 11명 중 마지막 기권선수였다. 알고 보니 “절대 물을 마시지 말라”는 남승룡 코치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20km 지점에서 물을 입에 넣었다가 바로 뱉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 마라톤에서는 일상적인 지도방법이기도 했다. ‘구술로 만나는 대한민국 스포츠인 역사’에 따르면 기록영상에 입에 물을 넣자마자 뱉는 벨기에 선수의 모습도 나온다고 한다. 최윤칠은 수분 섭취 외에도 경험부족(생애 세 번째 완주였음)과 과학부재 등을 패인으로 꼽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결단식에 참석한 최윤칠(오른쪽), 함기용 선생.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출전했던 이들은 대한체육회 초청으로 2012 올림픽에 초청받아 64년 만에 다시 런던 땅을 밟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2년 런던올림픽 결단식에 참석한 최윤칠(오른쪽), 함기용 선생.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출전했던 이들은 대한체육회 초청으로 2012 올림픽에 초청받아 64년 만에 다시 런던 땅을 밟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부상 중이던 최윤칠은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고도 기적의 완주로 3위에 골인한다. 함기용이 1위, 송길윤이 2위를 차지해 한국 선수들이 1~3위를 휩쓸어 큰 화제를 모았다. 최윤칠은 한국 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2시간 26분대로 우승을 차지해 당당히 출전권을 따냈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에서는 4위로 메달에 실패했다. 20km 지점에서 앞선 선수의 숫자를 잘못 전달받아 동메달을 확보하고 레이스를 펼쳤다고 한다. 이 대회 5,000m와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인간기관차’라 불린 체코의 에밀 자토펙은 원래 출전 계획이 없던 마라톤에 갑자기 참가해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5,000m, 1만m, 마라톤 3관왕은 이후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불멸의 기록이다. 자토펙이 아니었다면 동메달은 최윤칠의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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