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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720, 613, 914, 714 그리고 5163

입력
2015.07.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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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스와 코스모스 그리고 스페이스. 세 단어는 모두 우리 말로 우주라고 옮기지만 뜻은 조금씩 다르다. 유니버스는 천체물리학자들이 바라보는 우주다. 통일된 물리법칙이 작용하는 거대한 공간을 말한다. 코스모스는 신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카오스 즉, 혼돈의 반대 개념으로 정돈된 곳이다. 여기에 비해 스페이스는 그냥 공간이다.

그렇다. 우주는 텅 비었다. 국립과천과학관의 천문학자 이강환 박사가 옮긴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에는 우주가 빈 공간이란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비유가 실려 있다. 태양계를 100억분의 1로 축소하면 태양의 지름은 14㎝로 줄어든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커다란 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과 토성은 우리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로 표현할 수 있으며 제법 큰 천왕성과 해왕성은 콩알이 된다. 지구 같은 작은 행성은 볼펜 끝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아주 작은 쇠구슬에 불과하다. 축구장 300개 면적에 배 하나, 유리 구슬 둘, 콩알 둘, 그리고 볼펜 심 구슬 몇 개가 흩어져 있는 게 100억분의 1로 축소된 태양계다. 그냥 빈 공간, 스페이스라는 말보다 우주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우주는 크고 장엄하지만 우리 인류는 위대하다. 축구장 300개에 흩어져 있는 볼펜 심 구슬에 살고 있는 인류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작은 우주선을 쏘아 올려서 공간에 흩어져 있는 다른 점들을 정확히 찾아가고 심지어 다시 돌아오기도 하기에 하는 말이다. 우주 여행을 기념하는 몇 가지 숫자가 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 유인우주선 아폴로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사진은 달을 밟고 선 버즈 올드린의 모습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헬멧에 비쳐 보인다. 아폴로11호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9년 7월 20일 미국 유인우주선 아폴로11호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사진은 달을 밟고 선 버즈 올드린의 모습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헬멧에 비쳐 보인다. 아폴로11호의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720.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 이글호는 목표 지점보다 수마일 지난 위치에 착륙했다. 그때 계기판에는 불과 10초 분의 연료만 남은 것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닐 암스트롱은 지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호는 착륙했다.” 그때가 바로 1969년 7월 20일이었다. 이날 얼마나 많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꿈을 우주까지 확장했을까?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720이란 숫자를 기억한다.

2005년 11월 26일 일본의 우주탐사선 하야부사가 인류 최초로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5년 11월 26일 일본의 우주탐사선 하야부사가 인류 최초로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613. 오스트레일리아 우메라 사막에 모래 몇 알이 담긴 캡슐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 사연은 길다. 2003년 5월 9일 일본은 세계 최대 고체연료 로켓 뮤파이브를 발사했다. 여기에는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가 실려 있었다. 하야부사의 목적지는 지구에서 3억㎞ 떨어진 길이 500m의 작디작은 소행성 이타카와. 하야부사는 여기에 가기 위해 태양을 두 바퀴 돌아 20억㎞를 비행해야 했다. 2005년 11월 26일 하야부사는 단 2초 동안 소행성에 착륙해서 소행성의 모래알을 수집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됐다. 하야부사는 우주 미아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하야부사는 혼자 알아서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고, 소행성의 모래를 담은 캡슐을 사막에 무사히 떨어뜨렸다. 그날은 우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정신이 팔려 있던 2010년 6월 13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한 부러움과 축하하는 마음으로 613이란 숫자를 기억한다.

인도의 화성탐사선 망갈리안이 지난해 9월 24일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한 가운데, 방갈로르에서 인도우주개발기구(ISRO) 소속 과학자와 관계자들이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망갈리안의 성공으로 인도는 아시아 최초이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에 이어 세계 4번째로 화성에 탐사선을 보낸 나라가 됐다. AP 연합뉴스
인도의 화성탐사선 망갈리안이 지난해 9월 24일 화성 궤도 진입에 성공한 가운데, 방갈로르에서 인도우주개발기구(ISRO) 소속 과학자와 관계자들이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망갈리안의 성공으로 인도는 아시아 최초이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에 이어 세계 4번째로 화성에 탐사선을 보낸 나라가 됐다. AP 연합뉴스

924. 이번에는 미국이나 러시아 또는 일본이나 중국 이야기가 아니다. 카스트와 커리의 나라 인도가 화성탐사선을 발사하여 화성 궤도에 진입시켰다면 믿겨지는가? 인도는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인도 화성탐사선의 이름은 망갈리안. 놀랍게도 인도는 첫 번째 시도에서 화성 궤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다. 인도가 망갈리안 발사에 들인 돈은 불과 768억 원. 망갈리안과 비슷한 시기에 발사된 미국의 화성탐사선 메이븐 발사에 들어간 7,000억 원은 물론이고, 2013년에 공개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SF 영화 ‘그래비티’의 제작비 1,040억 원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영화 한 편 제작 비용도 채 들지 않은 인도 화성탐사선 망갈리안이 화성궤도에 진입한 날짜는 2014년 9월 24일.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투자한 22조 원이면 망갈리안을 300대는 보냈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화성을 이미 정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울분을 터뜨리면서 924란 숫자를 기억한다.

714. 내 뇌리에 새로운 숫자가 하나 더 새겨졌다. 미국 무인 우주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을 불과 1만 2,250㎞ 떨어져서 스치듯 지나간 것이다. 뉴호라이즌스호가 비행한 거리는 무려 56억 7,000만㎞. 빛의 속도로도 6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오는 데 걸리는 8분 20초 혹은 달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1.2초와 비교해보면 까마득한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간도 자그마치 9년 6개월이나 걸렸다. 뉴호라이즌스호를 발사한 2006년 1월 19일에는 명왕성이 아직 행성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 수 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전세계 사람들이 인터넷 중계를 통해 뉴호라이즌스호가 보내는 고래와 하트 모양의 지형 사진을 볼 수 있었다. 714 역시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720, 613, 924, 714 외에도 기념할 만한 우주여행과 관련한 숫자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젊은이들과 이런 숫자를 들면서 수학과 물리학을 이야기하며 꿈을 키워야 마땅하거늘, 요즘 우리 주변에 떠도는 숫자는 5163이다. 516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쿠데타 세력이 한강을 건넌 시간이 새벽 3시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관련기사▶ 당신이 모르는 숫자의 비밀). 516이든 5163이든 이 숫자와 관련된 기관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정신을 안드로메다에 두고 온 게 아닌가 싶다. 안드로메다는 너무 멀다. 적당히 하자. 우선 화성까지만 가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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