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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공짜 노동

입력
2017.01.1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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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좋은 자리니까 와주세요”라는 말을 참 자주 들은 적 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으니 너도 좋은 의도로 와서 공짜 강연을 해달라는 거다. 그러면 돈도 안 받고 가서 했다. 좋은 의도라는데 그걸 거절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거니까. “좋은 의도로 만든 잡지니까 원고 좀 써주세요”라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막말로 원고를 쓰는 건 재료비 드는 일도 아니니까. 사람들은 거기다 ‘재능기부’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였다. 돈도 기부하는데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도 느껴졌다. 내가 그런 청탁을 거절하기 시작한 건 ‘재능기부’라는 단어가 마치 굉장히 아름다운 것인 양 사람들에게 퍼지던 무렵이었다. 어느 광역시 홈페이지에는 이런 공지가 올라오기도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무료 예술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칠 재능기부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기겁을 했다. 아이들은 무료로 레슨을 받을 수 있고 너희들은 재능기부를 할 수 있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겠냐는 거였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예술 교육을 하는 데에 귀한 예산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있는 재능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국민의 피 같은 예산을 내어줄 수도 없다는 발상은 가히 폭력적이다. 모든 노동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어떤 노동은 차마 공짜로 부릴 엄두가 안 나고 어떤 노동은 대충 부려도 되는, 그러한 기준은 없다. 그러니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일이 없으면 해외에 나가 자원봉사라도 하라는 어느 대선 주자의 충고는 참말 우습다. 남의 귀한 청춘을 왜 자꾸 공짜로 내어주라 하는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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