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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선임기자

등록 : 2017.11.08 04:40

[기억할 오늘] 몰로토프 (11월 8일)

등록 : 2017.11.08 04:40

스탈린 체제의 외무상으로 1940ㆍ50년대 외교무대를 누빈 몰로토프가 1986년 오늘 별세했다.

뱌체슬라프 몰로토프(Vyacheslav Molotov, 1890.3.9~1986.11.8)는 스탈린 체제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외교장관(외무인민위원) 겸 인민위원회 의장(총리)으로 2차 세계대전 후 급박했던 외교무대에서 각종 동맹과 회담을 이끈 정치인 중 한 명이다.그는 소비에트의 2인자로서 내도록 스탈린 후계자로 꼽혔으나 그 때문에 스탈린의 견제를 받았고, 외교무대에서 비교적 ‘합리적’ 태도를 보인 탓에 국내에서는 정치적으로 손해를 봤다. 49년 그는 외무장관 직을 잃고 사실상 숙청됐다가 53년 스탈린 사망 직후 복귀했지만, 흐루시초프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 몽골 대사 등 한직을 떠돌다가 62년 은퇴했다.

그는 1906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혁명 1세대로 21년 정치국 후보위원 겸 중앙위원회 서기로 중앙 정치무대에 진입, 24년 레닌 사후 스탈린을 지지한 덕에 출세가도를 달렸다. 26년 정치국 정의원으로 승진하며 모스크바 당위원장이 됐고, 40세이던 30년에 인민위원회 의장이 됐다. 그는 외무장관으로 39~49년, 53~56년 13년을 재직하며 39년 독ㆍ소불가침조약과 그 해 말 핀란드 침공(겨울전쟁), 샌프란시스코회의(45)와 국제연합 창설, 테헤란 회담(43), 얄타ㆍ포츠담 회담(45) 등에서 소련을 대표했다.

그는 전후 동구블록을 구축하고 유지ㆍ강화한 주역이었다. 미국의 전후 원조프로그램인 ‘마셜플랜’에 대항하기 위한 동유럽 경제협력프로그램(일명 ‘몰로토프 플랜’)을 설계한 것도 그였다. 외교 무대의 인상이나 스탈린의 의심과 달리 그는 골수 볼셰비키였고, 스탈린 충성파였다. 그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본주의 국가가 있는데 하나는 교활하고 위험한 제국주의자 국가이고 나머지는 그들의 먹잇감에 불과한 ‘멍청한 국가’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조국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 결과가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오명으로 남았다.

화염병을 의미하는 ‘몰로토프 칵테일’은 겨울전쟁(39.11.30~40.3.6) 초기 몰로토프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 “우리는 핀란드에 (폭탄이 아니라) 음식을 공수하고 있다”고 선전하자 핀란드인들이 “그럼 답례로 칵테일을 대접하겠다”며 소련 전차에 던지던 화염병에 붙인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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