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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가

입력
2017.01.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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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 권력자 통치 수단으로 전락

공정성 잃은 법치가 탈법∙편법 양산

법은 권력 아닌 국민 편에서 해석돼야

며칠 전 특검 수사 방향을 놓고 친구와 논쟁을 했다. 그는 특검이 법리에 충실하지 않고 촛불 민심에 영합한다고 봤다. 국민의 낮은 준법 의식도 도마 위에 올렸다. 그러면서 폴리스라인을 넘어선 시민을 곤봉으로 내리치는 미국 경찰과 과격한 시위문화에 시달리는 한국 경찰을 비교했다. 법이라는 외적 강제 수단이 여론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능해야 법치사회라는 것이다. 말인즉슨 그럴 듯했으나 동의하지 않았다.

우선 우리 법 기준이 너무 높다. 권력층이 국민이 지키기 어려운 법을 만들어 놓고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통계를 보면 벌금 이상 형벌을 받은 전과자 수가 15세 이상 성인 인구의 26.5%(1,100만명)나 된다. 법 기준이 높으니 제대로 지키기가 어렵다. 권력자가 맘먹고 뒤지면 누구든 범죄자가 안 될 도리가 없다. 수사 및 세무당국을 동원한 ‘협박’이 통하는 배경이다. 그러니 편법이 난무하고 법을 어겨도 양심의 가책을 별로 안 느낀다. 미국은 법 기준이 낮은 대신 위반하면 가차없이 처벌한다.

법 적용은 공정한가. 권력과 돈을 가진 이에겐 한없이 부드럽고 사회적 약자에겐 가혹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이 돼 버렸다. 플라톤은 법의 근거와 목적을 설명한 책 ‘법률’에서 “참된 법률의 지배는 자의로 복종하는 자를 지배하는 것이지 결코 강제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는 강력한 법의 통치가 탈법을 부추기는 역설을 목도하고 있다.

법의 지배가 정당성을 잃은 사회에서는 부정청탁 등 음성적 로비가 판친다. 여기서 사회적 지위는 곧 권력이요 돈이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1년에 100억 가까운 수임료를 벌어들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고검장 퇴임 후 법무법인에서 월 1억원을, 안대희 전 대법관은 개업 5개월간 16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전관예우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전관을 이용한 로비는 권력과 돈을 가진 이들의 갑질과 횡포를 도와주는 합법적 통로다.

황 권한대행이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으며 “우리나라 국민 안전과 법질서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라고 했다. 법과 원칙은 권력자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말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세계 속 한국은 레벨이 훨씬 더 낮다”며 언론의 계도 역할을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야 백 번 옳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면 누가 탓하랴. 대통령이 재벌과 결탁해 수백억 뇌물을 챙기고 검사가 100억원 넘는 뇌물을 받아먹어도 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권력자나 재벌은 밥 먹듯 법을 위반해도 잘만 빠져나간다.

최근 3개월간 1,000만명이 참가한 촛불 집회를 보라. 절도 폭력 등 불미스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광장은 평화와 질서 그 자체였다. 대통령 탄핵 이후 음주운전사고 18%, 절도 9% 등 범죄도 대폭 줄었다. 영국 노팅엄대 연구팀에 따르면 국가의 정직성과 국민의 정직성은 대체로 일치한다. 권력층이 부도덕하고 부패가 만연하면 국민도 자기 이익만 중시해 탈세 사기 등 범죄가 늘어난다.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 정상화의 기틀이 마련되자 범죄가 줄어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국민에게 “법질서 수준이 낮다”는 말을 내뱉지 마라. 굳이 하려거든 법을 우습게 아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재벌 등 국정농단 세력에게 이렇게 들려줘라. “여러분이 국민의 높은 법질서 수준을 따라잡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준법을 부르짖는 권력자를 수없이 봐 왔다. 그들에게 국민은 통치 대상일 뿐이다. 엄격한 법 적용을 외면하는 국민은 떼법을 쓰는 폭도나 다름없다. 법은 역사∙사회적 맥락을 벗어난, 그 자체로 순수한 영역이 아니다. 소수 특권층과 엘리트가 법 해석을 독점해선 안 된다. 법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국민 삶의 내용과 방식, 시대 가치와 규범을 담아내야 한다. ‘법대로’의 날카로운 창은 국민이 아닌 권력자를 겨냥해야 한다. 국민 의지와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법은 법이 아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고재학 논설위원, 국장 /2016-12-21(한국일보)
고재학 논설위원, 국장 /2016-12-21(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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