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무 기자

등록 : 2018.01.21 20:00
수정 : 2018.01.22 10:24

'욱'해 지른 불에... 방학여행 세 모녀 참변

종로 여관 방화로 6명 사망

등록 : 2018.01.21 20:00
수정 : 2018.01.22 10:24

주인의 성매매ㆍ숙박거절에 앙심

50대 남성, 1층 복도에 불 질러

경찰에 “방화했다” 스스로 신고

유일한 탈출구 막혀 피신 어려워

20일 오전 3시쯤 서울 종로구 종로5가의 한 여관에 방화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 화재로 5명이 숨졌다. 종로소방서 제공

엄마와 두 딸의 서울 가족여행은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저지른 홧김 방화로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게 됐다. 20일 새벽 발생한 종로 여관 방화 참사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은 모두 6명. 이 중 3명이 방학을 맞아 서울로 여행을 온 뒤 이 곳에서 첫날 밤을 묵은 모녀 사이로 확인됐다.

21일 서울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전남 장흥에 살고 있는 주부 박모(34)씨는 방학에 맞춰 중학교 3학년생 큰 딸(14)과 초등학교 4학년생 작은 딸(11)과 함께 전국 여행에 나섰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다.

모녀는 여행 5일차인 19일 서울에 도착했다고 한다. 서울 지리를 잘 몰랐던 이들은 당장 머물 수 있는 여관을 찾다 참사가 벌어진 종로구 서울장여관에 짐을 풀게 됐다. 저렴한 곳을 찾다 그랬는지, 인근을 여행하기 위해 일부러 종로 쪽으로 숙소를 정했던 건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모녀가 투숙한 여관은 주로 장기투숙객이 몰려 속칭 ‘달방’이라 불리는 곳으로 하루 방값이 1만5,000~3만원 정도로 싼 편이다. 박씨 남편과 친척 등 유족은 이날 경찰에 출석해 피해자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이날 경찰은 여관에 불을 지른 중국음식점 배달원인 유모(52)씨를 구속했다. 유씨는 20일 오전 3시 8분쯤 여관에 불을 질러 총 10명(사망 6명, 부상 4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현존건조물방화치사 및 치상)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유씨는 방화에 1시간 앞선 2시6분쯤 술에 취한 채 여관 주인 김모(71)씨와 다툼을 벌였다. “성매매가 가능하냐”고 묻자 주인이 거절하고 숙박도 안 된다고 한 것에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여관 주인 신고로 현장에 출동했지만 유씨가 말이 통할 정도로 만취하지 않았고, 별다른 행패를 부리지 않아 현장에서 주의 정도만 주고 보냈다”고 했다.

유씨는 실랑이 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아 택시를 타고 약 1.7㎞ 떨어진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이 떨어졌다”면서 휘발유 10ℓ를 산 것으로 조사됐다. 택시를 타고 다시 여관으로 온 유씨는 현관문을 열고 1층 복도에 휘발유를 모두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유씨는 이후 태연하게 “여관에 불을 질렀다. 근처 약국 앞에 있겠다. 여관 주인이 나를 안 들여보내줘서…”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여관 인근 약국 앞에 앉아있는 유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휘발유 때문에 불이 건물 전체로 빨리 번졌다”고 말했다. 불이 나자 여관 주인과 인접 업소 종업원 등이 뛰쳐나와 소화기 10여개로 초기 진화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스프링클러는 건물 용도와 연면적상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여관이 좁은 골목 안쪽에 있어 소방차량 진입도 어려웠다. 소방차량 50대와 소방관 180여명을 투입한 화재 진화는 1시간가량이 소요됐다.

전체 10명 투숙객 중 유일하게 혼자 힘으로 탈출에 성공한 최모(53·205호 투숙)씨는 “방문으로 나가려 하니 벌써 방문 틈 사이로 연기가 들어오고 있었다”며 “유일한 탈출구인 창문을 깨고 뛰어내릴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의류공장에 다니는 최씨는 이날 일찍 출근을 하려고 잠에서 깨어 있었다.

나머지 투숙객들은 속수무책으로 화마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데다 불이 난 사실을 뒤늦게 알았더라도 대피로는 없었다. 유씨가 유일한 탈출구인 1층 현관 복도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1층 안쪽으로 뒷건물 노래방과 연결되는 지하계단이 있었지만, 투숙객들은 이미 방 밖으로 피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소방당국은 보고 있다. 옥상에 창고 용도 가건물이 있어 위쪽으로 대피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실제 10명 중 9명(사망자 6명과 부상자 3명)은 모두 방 안에서 발견됐으며 심지어 세 모녀가 숨을 거둔 105호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었다.

피의자 유씨에 대해 지인들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했다. 함께 중식당에서 배달 업무를 하는 박모(58)씨는 “유씨가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종로5가에서 중식당 배달 업무를 한 유씨는 두 달 전 종로4가 쪽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씨는 “아들이 곧 결혼을 한다고 상견례도 있다고 했는데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가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무 기자 allclea@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술에 취해 여관에 불을 질러 5명이 숨지는 참사를 일으킨 종로 여관 방화범 유모씨가 20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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