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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무조사 면제, 상(賞)으로 쓰지 말자

입력
2017.12.26 15: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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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등을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한데 조세저항이 만만찮다. 내년부터 소득세, 법인세의 최고세율이 인상되니 소득탈루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조세저항의 근원은 소득창출의 불공정, 정부지출의 비효율, 조세행정의 불공정이다. 이 중 기업인과 자영업자 불만의 핵심은 조세행정, 특히 세무조사이다.

그간 정부는 기업을 손보는 수단으로 표적 세무조사를 활용해 왔다. 지난달 국세청의 자체 개혁기구인 국세행정개혁 TF는 과거 정부의 세무조사권 남용행위 의심사례를 발표했다.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 김제동, 윤도현 등 소위 좌파 연예인 소속사,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에 비협조적인 컨설팅업체에 대한 보복성 세무조사가 포함됐다. 결국 국세청장이 과거 세무조사의 불공정성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러한 표적 세무조사는 기업과 국민의 세무행정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킨다. 앞으로 이러한 관행이 없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세무조사 유예ㆍ면제는 상(賞)으로 쓰인다. 모범납세자가 되면 세무조사를 유예해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각 지자체도 관내 우수 기업을 선정하여 지방세 조사를 면제해준다. 또 고용을 2~4% 늘린다는 계획을 국세청에 제출하면 세무조사를 면제해준다. 이에 따라 작년만 해도 9,000여 기업이 혜택을 보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국세청은 중소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유예했었다. 2015년에는 메르스 대책으로 전국 모든 병의원에 대한 세무조사를 유보하기도 했다. 올해엔 포항 지진 피해 납세자에게 세무조사를 연기ㆍ중단하는 정책이 나왔다. 최근 제천스포츠센터 화재 피해자에게 세무조사를 면제한다는 대책도 발표되었다.

세무조사 유예ㆍ면제가 약방의 감초로 활용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 경우, 징수유예는 일리가 있으나 납부세액을 알아보자는 세무조사를 면제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세무조사가 기업에 부담을 주는 나쁜 것이며 정부 자의에 따른 정책수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경제상황이 어려우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뜻인가. 경제가 어렵다고 검찰이 사기 용의자를 눈감아 주지는 않는다.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면제에도 피해자가 있다. 바로 국민이다. 표적 세무조사가 직권남용인 것처럼 세무조사 유예ㆍ면제도 세무당국의 남용행위이다.

중소기업, 자영업자가 세무조사 면제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63개국의 2017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했는데, 이 중 우리가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항목이 있다. 바로 회계감사의 적절성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회계는 대기업보다 더 불투명하다. 중소기업은 비상장이 대부분이고 외부회계 감사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통계연보에 의하면 2015년 매출 5,000억원 이상 기업은 법인세 신고기준 6%의 탈루율을 보이나 100~200억원 규모 기업은 33%의 높은 탈루율을 보인다. 현금거래 비중이 높은 자영업자의 탈루율은 더 높다. 올 국감자료에 의하면 작년 고소득 자영업자 약 1000명을 조사했더니 평균 23억원을 버는 사람들이 평균 13억원만 신고했다고 한다. 평균 탈루율이 43%이다. 특히 음식ㆍ숙박업 등 현금수입업종의 탈루율은 66%에 달했다. 회계의 투명성이 낮은 상황에서 세무조사마저 없다면 이러한 탈루가 없어질까.

현 세법은 모든 기업을 탈세범으로 만들어 놓고 정부가 눈감아 주는 것을 즐거운 정책수단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세법을 단순ㆍ현실화해야 한다. 또한 세무조사만 하면 기업경영이 마비되는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세무조사 유예ㆍ면제가 상이 안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전에 일단 세무조사를 상벌로 쓰는 것부터 그만 두자. 세무조사가 정부의 즐거운 정책수단이 아니어야 개혁의 먼 길을 떠날 마음이 생긴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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