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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이 필요한 시대... 사도 바울이 다시 소환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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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이 필요한 시대... 사도 바울이 다시 소환된 이유

입력
2016.02.0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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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개종'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카라바조의 작품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의 전향'. 말에서 떨어져 허망하게 팔을 휘저으며 눈은 채 뜨지도 못한 바울의 모습은 바리새파 유대인의 거룩함에서 예수의 사랑으로 떨어져내린 극적인 순간을 드러낸다. 문학동네 제공
'바울의 개종'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카라바조의 작품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의 전향'. 말에서 떨어져 허망하게 팔을 휘저으며 눈은 채 뜨지도 못한 바울의 모습은 바리새파 유대인의 거룩함에서 예수의 사랑으로 떨어져내린 극적인 순간을 드러낸다. 문학동네 제공

“바울이 다시 불려 나오는 시대는 좋은 시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에서 바울은 큰 변화의 시대에 늘 불려 나왔습니다. 그 또한 바울의 운명일 수 밖에요.”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문학동네)을 펴낸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는 4일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의 부제는 ‘사도 바울과 새 시대의 윤리’다. 요즘 철학계를 배회하는 유령, 바울을 다뤘다. 바울 열풍에 대한 국내 신학자의 응답이라는 점에서 반갑다.

바울은 기독교도를 박해하던 바리새파 유대인에서 기독교도로 개종한 뒤 기독교 전도를 위해 온 몸을 바쳤다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에서 도끼에 목이 잘려 죽었다. 전도를 위해 바울이 쓴 편지는 신약성서의 뼈대다. 다민족, 다인종 세계였던 로마제국을 상대로 전도하다 보니 기독교의 보편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꾸로, 그랬기에 바울은 반기독교, 반종교 진영의 가장 큰 적이었다. 18~19세기에 바울은 “찬 밥” 취급을 당했다. “유대인은 유대인 혐오주의의 원천이었다는 이유로, 계몽주의자들은 윤리를 신앙으로 바꿨다는 이유로, 니체 같은 철학자는 사랑의 예수를 기독교화하면서 증오를 불어넣었다는 이유에서 모두가 바울을 비판했죠.”

그랬던 바울이 21세기에 왜 떴을까. 그것도 가장 반종교적이어야 할 것만 같은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조르주 아감벤 같은 서구 급진 좌파 사상가들 틈에서. 책 제목이 실마리다. 바울의 서신을 모은 고린도전서 1장 28절 “하느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서 ‘것들’은 헬라어로 중성 명사다. 중성 명사를 쓴 이유는 성별, 인종, 계급 같은 세속의 어떤 차이, 차별, 구분과도 상관없다는 얘기다. 얼굴 없고, 이름 없고, 성과 없고, 가치 없다고 내버려진 모든 이들의 전면적인 복권이다.

21세기 급진 좌파들이 주목하는 부분도 이런 대목이다. 바디우는 바울이 “로마 제국의 폭력적 보편성, 헬라 문화라는 기만적 보편성, 유대주의라는 특수한 공동체주의를 거부한 뒤 개별적이고 순수한 주체”가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젝은 어떤 신비나 초월보다 철저하게 자기를 버리고 낮추는 바울의 자세에서 “자기 비움의 기독교”를 읽어내고 이것이 스스로가 진리요 참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에 균열을 내는 변혁의 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자체가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민중신학까지 갈 필요 없이 바울의 기독교 사상 내에 이미 급진정치의 피가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는 의미다.

물론 김 교수가 급진 철학자들 모두의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다. “바디우의 경우 아무래도 논리 전개에 어설픈 구석이 있어요. 1960, 70년대의 신학에 토대를 두고 있어서 낡았고, 자신이 말하고픈 바에 맞춰 너무 제 마음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바디우의 책은 그의 정치적 지향을 전제하고 읽어야 비로소 이해될 정도니까요.”

김 교수는 그러나 이를 굳이 ‘오독’이라 부르진 않았다.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보편성이 전세계를 폭력적으로 휩쓰는 현상에 대한 고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해석상의 큰 변화가 바울에게 새삼스러운 건 아닙니다. 예전 역사를 보면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처럼 큰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 모두가 바울을 파고 들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일이라면 스스로를 기꺼이 역사의 제단에 바칠 거에요. 개신교가 바울의 이런 정신을 가장 강하게 물려받았지요.”

우리의 개신교가 그럴 역량이 될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기는커녕 온갖 추문과 잡음으로 얼룩진 게 현실이다. ‘개독교’라는 비아냥도 끊이지 않는다. 김 교수는 단호했다. “일부의 문제입니다. 국민들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듯, 신자들의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

이 책을 쓴 건 사실 일반인들에게 기독교의 색다른 면모를 알려주려는 의도도 포함됐다. 신학이 아닌 인문학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다. 기도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의 종교과잉도 문제지만 어쨌거나 현실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종교를 아예 알지 못하는 ‘종교문맹’도 문제라 보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테드 크루즈는 연설 때마다 성경을 인용합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목사의 딸입니다. 이슬람국가(IS)도 종교집단입니다. 인간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초월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종교라는 이유로 이 동경을 무시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큰 부분을 놓치는 겁니다.” 김 교수는 “발전된 인문학적 바탕 위에 성서를 결합시켜 ‘비종교적 인문학’의 관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학자로의 나의 주된 관심”이라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요즘 서구 급진 철학자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사도 바울을 다룬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을 낸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 교수. 문학동네 제공
요즘 서구 급진 철학자들 사이에서 뜨고 있는 사도 바울을 다룬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을 낸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 교수.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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