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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비즈니스] “야하든 폭력적이든 뭐 어때요? SNS스타 돼서 큰돈 벌고 싶어요”

입력
2017.09.1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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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대 청소년 4명 중 1명

일주일에 1번 이상 1인 방송 시청

게임 등서 점차 선정적 영상으로

스마트폰 앱으로 직접 방송도

#2

돈 잘 버는 크리에이터ㆍBJ들이 롤모델

부모가 “나쁜 콘텐츠” 설명해도

“누구는 1억 넘게 벌었다” 반박

학교서 진지한 교육 고민할 때

장래 희망으로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중학교 3학년 A(15)군은 최근 유튜브에 ‘츤데레아가씨(츤데레) 엔딩2’라는 9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남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츤데레’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녹화한 영상이다. A군은 지난해 부모님을 설득해 캠코더 등 100만원어치 장비를 사 설치한 뒤 ‘츤데레’나 ‘배틀필드’ 같은 게임을 중계하는 영상을 꾸준히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한 중학생이 유튜브에 올린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 체험 영상.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게임인데 성적 표현의 수위가 성인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하게 높다.
한 중학생이 유튜브에 올린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 체험 영상.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게임인데 성적 표현의 수위가 성인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하게 높다.

‘츤데레’는 어렸을 적 헤어졌던 여자 동창을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 연애 감정을 쌓아가는 내용. 게임이지만 성인 영화에서나 볼 법한 높은 수위의 성적 표현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A군은 “신체 접촉 내용이 나오고 때론 여주인공이 나를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면 게임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여주인공에게 욕을 하고 거친 표현을 내뱉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신이 올린 영상이 2,000회 가까이 조회돼 유튜브 가상계좌에 광고수익이 쌓이는 것을 보자 A군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A군은 높은 조회수를 바탕으로 큰 돈을 버는 영상 크리에이터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영상 조회수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요. 야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엽기적인 내용을 넣으면 가장 쉽죠. 아이디, 영상 제목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들 시선을 끌 수 있을까 머리를 계속 씁니다. 이런 걸 잘해서 성공한 크리에이터나 BJ(Broadcasting Jockey)가 되고 싶어요. 유튜브에서 아주 심각한 게 아니면 내용은 별 문제 삼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자극적 영상에도 무덤덤

유튜브나 아프리카TV, 트위치 같은 스트리밍 생방송은 요즘 청소년들에게 일상이다. 방과 후 잠들 때까지 많게는 하루 3, 4시간, 좀 덜 보는 편이어도 1, 2시간은 족히 영상을 즐긴다.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이 세대에겐 검색부터 오락, 커뮤니케이션이 모두 영상으로 이뤄지고,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의 소재도 대부분 여기서 나온다. 남학생은 주로 먹방ㆍ게임, 여학생은 패션ㆍ뷰티가 관심사다.

초등학생부터 손 안에 쥐고 있는 이 영상의 바다는, 어떤 내용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방비의 세상이다. 유튜브 등 사업자의 자정 노력이나 규제기관의 감독이 사실상 없고, 개인화된 스마트폰을 부모가 관리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유용한 지식과 감동을 담은 영상도 많지만, 욕설은 기본이고 범죄에 가까운 언행을 재미삼아 전달하는 쓰레기 콘텐츠들도 창궐한다. 최근에는 근친상간, 아동과의 성관계 등을 담은 음란 소설을 영화 자막처럼 흐르게 제작한 유튜브 동영상 ‘썰동’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지난 7월 부산경찰청이 음란물 유포 혐의로 입건한 ‘썰동 대부’ 이모(27)씨의 유튜브 채널은 4개월간 조회수 1,700만회를 기록했고, 이 중 청소년이 137만 여회(7.8%)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어린 아이들은 처음 장난감, 연예인, 게임 등으로 유튜브를 알게 돼 점차 엽기적 사건과 선정적 영상을 찾아보다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1인 방송을 정기 구독하는 식으로 빠져든다. 수도권 한 초등학교 5학년 B(11)군은 하루 평균 2, 3시간 정도 유튜브 영상을 본다. 갖가지 특이한 실험을 하는 허팝, 장난감 크리에이터로 유명한 꾹TV를 즐겨본다. “스마트폰에 15개 가까운 유튜브 1인 방송 채널을 즐겨찾기로 등록해 놓으니까 새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보게 돼요. 유튜브가 알아서 제가 좋아할 만한 추천 영상을 띄워줘 그것까지 보면 시간이 금방 가요. 친구들끼리 야한 동영상을 돌려 보거나 알려주기도 하는데, 여자를 깔보거나 욕하는 내용이 많아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보게 돼요.”

또 다른 초등학교 5학년 C(11)양은 “처음에는 걸그룹, 아이돌, 화장하는 법 같은 영상을 보다가 친구들이 알려준 영상을 보게 됐다”며 “욕 나오는 방송은 안 보려 했지만 대부분 방송에 욕이 나와 그걸 빼고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난 영상을 많이 알고 있을수록 인기가 많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보는 친구들도 있고요.” 남학생들이 자극적인 1인 방송 영상에서 배운 욕설이나 여성을 비하하는 말에 똑같이 맞대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영상을 많이 본 여학생들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6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4명 중 한 명(26.7%)이 일주일에 한번 이상 1인 방송을 시청했다. 중학생이 32.2%로 가장 많이 보고, 고등학생 24.8%, 초등학생 22.6% 수준이다.

모바일 영상과 1인 방송
모바일 영상과 1인 방송

아동기부터 폭력과 혐오, 엽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 청소년들은 이에 둔감해지기 쉽다. 수도권 한 중학교 D교사는 최근 크리에이터 갓건배와 신태일의 혐오 방송 논란에 대해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학생들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했다. “혐오 발언과 살해 협박의 수위가 도를 넘는데도 학생들 상당수가 덤덤하게 받아들이더군요.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겁니다.” A군도 “몇몇 친구들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는 것은 심하지 않느냐’고 했다가 도리어 면박만 당했다”며 “많은 남자아이들이 갓건배가 심했다고 생각한다. 혐오에는 혐오로 답해야 한다거나 평소 신태일의 엽기 방송을 즐겨보면서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답했다.

“뭐가 됐든 유명해지는 게 목표”

더욱이 혐오든 성상품화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곧 돈이 되는 실례를 흔히 목격한 청소년들은 “나쁜 콘텐츠를 보지 말라”는 부모의 말을 납득하기는커녕 오히려 ‘SNS 스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일베 문화가 혐오와 폭력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돈까지 벌 수 있다는 목표지향이 덧붙여진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이나 강릉 여고생 폭행사건 등의 가해자들이 폭력현장을 영상과 사진 등으로 촬영해 SNS에 올리고, 폭행 정도가 너무 심해 처벌을 받겠다는 반응에 ‘페북(페이스북) 스타 되겠네’라고 답한 것 등은 이런 문화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 라이브, 게임과 방송이 동시에 가능한 애플리케이션 등 기술적 발전은 초등학생에게도 영상 제작의 길을 열어준다. 초등학교 6학년 E(12)군은 A군과 마찬가지로 ‘스페셜 솔져’ ‘펜타스톰’ ‘클래시 로얄’ 같은 게임 중계 방송에 푹 빠져 있다. “스트리트게이머, 모비즌 같은 어플리케이션만 깔면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면서 유튜브로 실시간 방송을 올리거나 녹화해 올릴 수 있어요. 친구들과 여럿이 같이 게임을 하면서 영상을 만들기도 하구요. 사람들이 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반응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실력을 키워서 잘 되면 인기도 얻고 큰 돈도 벌 수 있는 크리에이터나 BJ가 될 수도 있잖아요. 다들 한 번씩 호기심 삼아 중계 해 보는데, 한 반에 2, 3명은 특히 열심히 합니다.” 유튜브, 아프리카TV는 만 14세 이상에 대해 계정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게 하는데, 이보다 어린 나이부터 그 훈련을 하는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을 둔 F씨는 아이들 때문에 유튜브 영상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아이들이 걸그룹이나 아이돌처럼 좋아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BJ 1, 2명은 다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연예인 같은 존재죠. 영상을 보면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내용이지만, 아이들한테 이건 나쁜 거고 보면 안 된다고 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요. 다들 보는데 왜 엄마만 그러느냐고 하죠. 스마트폰에, 집에 있는 컴퓨터에,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볼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겠어요?”

40대 G씨도 중학교 2학년 딸에게 커서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페북 스타 될 거야”라고 대답하는 통에 속을 끓이고 있다. “딸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페북 스타라고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대부분 어른처럼 차려 입고 화장한 10대들이에요. 유명해지면 모델이나, 크리에이터가 돼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면서 이런 아이들과 페북 친구를 맺고 자기 사진도 인스타그램 등에 열심히 올려요. 외모를 꾸미는 것만으로 인생의 직업을 삼고 성취감을 얻을 수 없다고 해도 귀담아 듣지 않아요. 오히려 누구는 1억 넘게 벌었고, 누구는 몇천만원을 벌었다면서 반박해요.”

문제점 스스로 깨닫게 해야

그러나 유해 미디어 콘텐츠가 청소년 문화에 미치는 뿌리 깊은 영향에 대해 교육 현장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런 영상이 문제가 되는지 학생들이 이해하고 성찰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수도권 중학교의 H 교사는 “누군가에 대한 혐오가 왜 문제인지 청소년들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외국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이를 담은 영상을 보는 것이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꺼내놓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꺼리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 I씨는 모둠학습을 통해 학생들과 동영상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직접 영상을 만들면서 학생들이 평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혐오스럽고 자극적인 영상이 보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조금씩 느끼게 되고 스스로 좀 더 건강한 영상을 찾아보게 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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