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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인간문화재 성창순 명창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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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인간문화재 성창순 명창 별세

입력
2017.01.0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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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성창순 명창. 문화재청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성창순 명창. 문화재청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성창순 명창이 5일 오후 10시 45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83세.

광주에서 태어난 성창순 명창은 부친이자 고수로 명성이 높은 판소리 명창 성원목(1912~1969) 선생의 영향 아래서 자랐다. 김연수창극단에 입단해 심청가를 시작으로 전문 소리꾼의 삶을 살게 된 고인은 이후 김소희(심청가), 정응민(춘향가ㆍ심청가), 박녹주(흥보가) 등 당대의 소리꾼들을 사사하며 독자적인 소리세계를 구축했다.

‘소질이 없으니 시집이나 가라’고 호통치는 스승에게 매달려 음악을 시작한 그는 스스로를 ‘오기와 베짱의 소리꾼’으로 불렀다. 소리가 길고 여성적인 애절함이 특징인 서편제류로 시작했으나 시원한 음색과 박력 있는 창법으로 본인만의 ‘보성소리’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성 명창은 1968년 한국국악협회 주최로 열린 전국명창경연대회에서 1등, 1978년 제4회 전주대사습 판소리 부문 장원(대통령상), 1982년 KBS 제1회 국악대상 판소리상, 1994년 화관문화훈장 등을 받으며 국악계 거목이 됐다. 1977년 심청가 완창 이후 그는 춘향가, 흥보가 등을 수 차례 완창했다. 길게는 7시간 이상 걸리는 판소리 완창 무대에도 자주 올랐다.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지정됐다.

지난해 12월까지 무대에 오르며 한평생 판소리 전승을 위해 노력한 고인은 판소리 세계화에도 앞장섰다. 1991년 국악인 최초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올랐고 1994년 호주 그리프스 대학에서 판소리 강좌를 열었다. 말년에는 후학에 힘썼다. 2010년 사재 5억원을 털어 보성에 건립한 판소리 예술관은 전시와 수련공간으로 활용됐다.

유족으로는 상주 승학을 비롯 5남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5시. 발인날인 9일 오후 2시 장지인 전남 보성군 판소리성지공원에서 국악인장으로 영결식과 추모공연이 열린다.(02)2227-7500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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