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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노무현 트라우마’와 ‘부시 트라우마’

입력
2018.01.08 17: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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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대북정책에 불신 컸던 미국

북핵 협상 실패 미국 책임도 없지 않아

‘한국 운전석’ 지지가 북핵 해결 첩경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밤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밤 청와대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공화당 정부는 한국 진보정권의 대북ㆍ외교정책에 불신을 보여 왔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대북 포용 정책과 등거리 외교가 미국의 국익을 저해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면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디스맨(이 사람)”이라고 부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지맨(만만한 상대)”으로 지칭한 것은 불신감 표출의 단적인 예일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시기 노무현의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의구심을 샀다. 노 전 대통령의 정책을 상당수 승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한미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외교부 장관도 없는 상태에서 조기 방미를 서두른 것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사드 배치와 한미 방위비 분담, 한미 FTA 재협상을 약속하고서야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라는 모호한 수사나마 얻을 수 있었다.

보수정권이 전면적으로 중단시킨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던 문 대통령의 계획은 그러나 북한의 도발로 좌절됐다. 지난해 7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베를린 구상은 북한의 연이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사실상 ‘사산’됐다. 결국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힘이 없다”며 무력감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의지를 밝힌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신년사는 문 대통령에게 반전의 기회다. 한반도를 휘감았던 전쟁 위기설을 뚫고 대화와 협상으로 가는 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험한 고개가 수두룩하다. 핵 무력을 인정받으려는 북한과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국제사회의 간극은 너무도 크다. 북한이 비핵화를 계속 거부할 경우 남북관계는 전면적 개선보다 부분개선에 머물 공산이 크다.

미국의 협조가 없으면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없다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으로서는 핵ㆍ미사일 위협을 해 온 김정은 정권의 평화공세를 의심 없이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표명은 일단 한국 정부에 주도권을 맡겨 보자는 전략적 판단이지 ‘최대의 압박과 관여’ 기조의 전면적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사실 트럼프의 마음 속에 정말 북한 문제의 주도권을 한국에 넘겨 줄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시로 정책을 뒤집었던 것을 떠올리면 언제 입장을 바꿀지 알 수 없다.

미국이 한국에 ‘노무현 트라우마’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부시 트라우마’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년간 (미국은 북한에) 모든 것을 줬다”고 했지만 북미 간 핵 협상을 되짚어 보면 미국의 책임도 없지만은 않다. 북미 간 벼랑 끝 협상을 거쳐 도출된 1994년 ‘제네바 합의’는 직후 실시된 미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이 클린턴 행정부에 제동을 걸면서 이행이 지연된 게 하나의 원인이 됐다. 그 후 2차 핵 위기 끝에 나온 ‘9ㆍ19공동성명’은 합의 한 달 만에 미국 재무부가 북한 돈줄을 죄면서 헝클어졌다.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역할을 존중하고 힘을 실어 줘야 한다. 남북대화를 적극 지지하는 게 미국의 국익에도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상되는 북한의 한미 간 ‘이간질’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긴요하다. 문재인 정부도 최선을 다해 트럼프 행정부와 면밀한 공조태세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북핵 문제에서 최종적으로 비핵화를 해결하려면 북한과 미국이 만나야 한다. 우리로서는 남북대화를 진행하면서 북미대화가 성사되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중재자 역할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북한 핵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고난도 게임이다. 중장기적 시각과 전략을 갖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핵 문제를 푸는 데는 보수와 진보가 다를 수 없다. 우리의 안위와 사활이 걸린 문제다. ‘평창’을 시작으로 긴 안목으로 한 발씩 나아가면 기회는 만들어지리라 본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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