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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경조사비 5만원

입력
2018.01.17 14: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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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과 친구 사이 경조사비는 ‘뿌린 만큼 거두는’ 보험 성격이라도 있지만, 갑을 관계에서 건네지는 경조사비는 뇌물에 가깝다. 권력을 쥔 공직자에게 반대 급부를 기대하며 갖다 바치는 부패문화의 반영이다.
친척과 친구 사이 경조사비는 ‘뿌린 만큼 거두는’ 보험 성격이라도 있지만, 갑을 관계에서 건네지는 경조사비는 뇌물에 가깝다. 권력을 쥔 공직자에게 반대 급부를 기대하며 갖다 바치는 부패문화의 반영이다.

2004년 식품의약품안전청 A국장은 억대 축의금을 받은 의혹이 불거져 수사를 받았다. 경찰이 170여명을 조사해 2,600만원 받은 사실을 밝혀냈고 이 중 50만원 이상 7건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A국장이 제약업체 등에 1,400장의 청첩장을 보냈으니 모두 조사했다면 억대를 가뿐히 넘겼을 게다. 경기도는 2년 전 수원시 공무원 A씨를 업무 관련자에게서 조의금을 받은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업자 3명에게서 받은 700만원만 뇌물로 인정해 기소했다. 경조사비로 처벌받은 전례가 드물어 고액만 기소했다고 한다.

▦ ‘서로 아는 처지라면 무슨 명목이 있어 주는 물건만 받고 아무런 명목이 없는 것은 받아서는 안 된다. 명목이란 것은 초상이 났을 때 부의를 하거나, 혼인할 때 도와주는 따위의 일이다.’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나오는 구절이다. 부조(扶助)는 계 향약 두레 등의 성격을 지닌 미풍양속이다. 슬프거나 기쁜 일을 품앗이해서 치르자는 것이다. 조선 말 사회상을 기록한 ‘하재일기’(荷齋日記)에는 떡 술 국수 북어 등의 물품이나 돈 10냥(쌀 5되 정도)을 부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 잔칫집이나 상가에 물건과 일손을 보태 주던 풍속이 돈봉투로 바뀌면서 가계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청첩장이나 부고를 접하면 가야 할지, 경조사비는 얼마로 할지 머리가 아프다. 수입이 줄어든 은퇴자에겐 큰 부담이다. 연금 생활자 가계지출 중 경조사비 비중이 16%로 의료비 두 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부부가 양가에 보내는 경조사비 액수로 갈등을 빚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에겐 주말 경조사 챙기기가 근무시간의 연장이다. 공공시설을 활용한 결혼식, 추도식 형태의 작은 장례식 등 문화를 바꿔야 경조사비 거품이 빠진다.

▦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차남 재용씨 결혼식 때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인 등에게서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1억원의 축의금을 받았다. 통상 축의금 액수가 5,000~1만원, 강남 아파트 값이 1억 원도 안 가던 시절이다. 지금도 고위직 경조사비 수입은 억대를 넘기 예사다. 17일부터 공직자가 업무 관련자에게 받을 수 있는 경조사비가 5만원으로 제한된다. 지도층 인사들이 ‘본전 생각’에서 벗어나 경조사비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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