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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유사역사학, 아마추어의 자리로 돌아가라

입력
2017.07.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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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갑갑해서 화가 났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왜 그렇게 제목을 지었냐고 따지듯 물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책을 내놓아 식민사학자라 매도 당한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 얘기다. 임나일본부설을 부인하고 반박한 책이라면 간단하게 ‘임나일본부설은 허구다’라고 하면 될 일이다. 아니, 판매에도 도움이 될 겸 시원한 민족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는 차원에서도 ‘일제의 사악한 의도를 통렬하게 고발한다’는 류의 제목을 붙일 만도 하다.

그런데 ‘허구인가’라고 제목을 정해놓으니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읽을 생각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달라붙어 ‘허구인가라고 해놓은 거 보니 허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책인가 보다’라고 미리 결론 내려놓고는 말 같지도 않은 억측과 억지를 부리지 않았던가 말이다.

물론 알고는 있다. 이 논리는 성추행 당한 여성에게 ‘그러게 왜 짧은 치마 입었어?’ ‘그러게 왜 헤프게 웃어?’ ‘그러게 누가 밤늦게 돌아다니래?’라고 말하는 것과 똑 같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논리다. 같은 책을 읽고도 딴소리를 한다면, 잘못 읽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읽었는지 해명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테크니컬한 제목’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조금 더 대중적인 제목 붙일 수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김 명예교수의 대답은 이랬다. “허구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잘못된 이해와 해석이 중첩되면서 생긴 일종의 오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학자는 ‘100% 완전한 거짓인 허구’와 ‘어느 정도 사실이 뒤섞여 있지만 잘못 이해되고 있는 오해’를 구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화법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사실 ‘옛 일’에 대해 우리가 가장 솔직히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잘 모르겠다” 뿐이다. 불과 일주일 전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마다 말이 다르고 기억이 다른 게 세상사다. 기록도 제대로 없는 수백 년 전, 수천 년 전 일을 지금의 우리가 정확히 알 도리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두들겨가며 한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다 해도 어느 날 반대 증거가 불현듯 나타나면 그 때까지 통설로 여기던 것이 일거에 무너지기도 한다. 해서 역사학계의 최종 답변은 늘 “지금까지 자료로 보건데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는 명제에서 딱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그 설명이 오랜 논쟁으로 정착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걸 깰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새로운 자료의 발굴’뿐이다.

이런 신중한 태도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나머지 역사에서라도 뭔가 내세울만한 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더구나 이웃 일본ㆍ중국과 대등하게 맞서고 싶어하는 대중들의 강렬한 열망을 만족시켜주진 못한다. 반면에 역사는, 어느 정도 지적 호기심을 지니고 있고 지적 성취감을 누리는 부르주아들이 취미 삼아 가지고 놀기에 적당한 측면도 있다. 여기에 민족적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정당성과 사명감까지 합쳐진다. 의사, 변호사, IT기업인 등 배울 만큼 배웠고 최신 트렌드를 아실 만한 분들이 백제 지도 누가 크게 그리나 하는 싸움이나 벌이고, 관계ㆍ학계ㆍ금융계 할 것 없이 어디에나 유사 역사학자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그 분들의 열정, 정의감, 사명감을 두고 조롱하거나 비난하고픈 생각 따윈 전혀 없다. 때론 아마추어의 열정이 모여 새로운 돌파구를 뚫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로서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전문 연구자들을 아무렇게나 매국 식민사학자라 매도하고 조롱하는 일 따윈 그만 둬야 한다. 더 나아가 국가기관의 사업에 간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유사’ ‘사이비’라는 이름은, 그 선을 넘어섰을 때 스스로 불러들인 이름이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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