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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서 손 떼!" 에르도안 교육 정책에 뿔난 터키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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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서 손 떼!" 에르도안 교육 정책에 뿔난 터키 학부모들

입력
2016.01.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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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수니파 성직자 양성학교 '이맘 하팁'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앙카라에서 열린 터키공화국 건국 91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앙카라=로이터 뉴스1
터키의 수니파 성직자 양성학교 '이맘 하팁'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앙카라에서 열린 터키공화국 건국 91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앙카라=로이터 뉴스1

터키의 친(親)이슬람주의 정의개발당(AKP)을 이끄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 이후 공립학교를 수니파 성직자 양성학교 ‘이맘(이슬람 지도자) 하팁’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AKP는 종교에 열의 있는 청년 세대를 육성해 터키의 미래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 70% 가까운 세속주의자(이슬람을 존중하면서도 개인 자유, 서구식 민주주의 옹호)나 온건 이슬람세력, 소수 종파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교육 정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전환 대상 학교의 재학생이나 학부모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수요가 없는 지역에도 지속적으로 이맘 하팁 전환을 강제하면서 반발이 거세다. 이에 학부모와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시민 단체를 꾸리고 “종교 교육을 강제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훌륭한 터키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며 교육권 수호를 촉구하고 있으나, 에르도안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슬람주의 교육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맘 하팁 재학생 수 12년 만에 100만명으로

이슬람 지도자 혹은 성직자를 뜻하는 ‘이맘’과 이슬람 사원에서 금요일 집단 예배를 주도하는 설교자를 지칭하는 ‘카팁’(khatib)의 의미를 따 만든 ‘이맘 하팁’은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 1923년 이후 생겨나기 시작했다. 터키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당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채택했지만, 이슬람 성직자 양성 필요성에 따라 이맘 하팁이 일부 지역에 설립된 것이다.

이후 근 100년을 작은 규모로 운영되던 이맘 하팁은 에르도안이 처음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4년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터키 전역의 이맘 하팁 수는 에르도안 대통령 당선 전인 2010년에 비해 2014년 73%나 늘었다. 재학생 수도 2002년 6만3,000명에서 지난해 100만명으로 폭증해 현재 전체 터키 학생들(10세~18세)의 13%가 이맘 하팁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맘 하팁 교과 과정 중에는 매주 13시간 코란을 공부하는 것부터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까지 포함돼 있다. 대체로 중등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 이맘 하팁에 진학한다고 미 주간지 포린어페어스는 전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정부가 일반 공립학교의 이맘 하팁 전환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반발이 거세다. 알레비파나 시아파 등 소수 종파의 신념과 이맘 하팁 설립 목적이 맞지 않는 데다, 종교 중심적인 교육을 원치 않는 학생, 학부모 역시 많기 때문이다.

터키 부모들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학교에서 손 떼’(Hands Off My School)라는 시민 단체를 구성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정부가 한 중학교를 이맘 하팁으로 바꾸려 하자 시민 1만3,000명의 서명을 받아 제동을 걸었다. 2014년 9월에는 어린이 4만명이 부모 허락이 없이 이맘 하팁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세속주의 교사 연합과 소수 종교 단체의 지지를 얻어 이맘 하팁 전환 중단을 촉구하는 행진을 벌였다. 지난해 2월 대규모 시위 때는 정부가 한 이맘 하팁의 교실 안에 학생들을 가두고 경찰 병력을 배치 시키면서 시위대와 유혈 충돌 사태를 빚기도 했다.

최근에는 터키 노동자 계층이 주로 모여 사는 곤고렌 자치구의 중학교 세 곳이 이맘 하팁으로 전환되면서 이 지역 주민 50여명이 소송에 나섰다. 소송 대리인 야세민 제이트노글루 변호사는 포린어페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국은 학생들에게나 학부모에게 의견을 전혀 묻지 않았기 때문에 이맘 하팁으로의 전환은 불법”이라면서 “현재 맡고 있는 관련 소송은 총 5건으로, 이는 각각 다른 지역의 이맘 하팁에 대한 소송”이라고 밝혔다. 그는 “곤고렌에는 이미 7개의 이맘 하팁이 있기 때문에 추가 설립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맘 하팁으로 전환된 한 중학교의 학부모는 “종교 학교를 피하기 위해 아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사 보낼 예정”이라며 “정부는 우리에게 압박을 주고 있고, 아이들에게 원치 않는 교육을 강요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별 역사 지우겠다며 이맘 하팁 부활

에르도안 정부가 이처럼 이맘 하팁에 열정을 보이는 배경에는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97년 세속주의 터키 군부는 쿠데타로 이슬람주의 네즈메틴 에르바칸 정권을 몰아낸 이후 이맘 하팁 출신 학생들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실시했다. 당시 군부는 이맘 하팁 학교를 대거 폐쇄하는가 하면 이맘 하팁 졸업생 대부분을 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했다. 이맘 하팁 출신인 에르도안 대통령과 다수 정부 인사들은 이런 핍박을 기억하고 있는 데다, 97년 이후 세속주의 득세로 소외감을 느낀 다수 이슬람주의 국민들에게 이맘 하팁의 부활이 큰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탄불 소재 대학의 타히르 압바스 교수(사회학)는 “이슬람주의자들 다수는 자신들을 케말리즘(케말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적 건국 이념)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며 “이들은 이맘 하팁을 새로 연다는 사실 자체가 세속주의 엘리트들에 복수하는 것이자 과거 세속주의가 주도했던 역사의 기억을 없애는 작업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가디언에 설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교육 개혁 구상은 이맘 하팁 확충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터키 국가교육위원회는 2014년 ‘오스만어’를 이맘 하팁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일반 고교에서는 선택과목으로 채택하는 권고안을 의결했다. 오스만어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오스만제국의 공용어로 아랍문자를 사용하는데,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8년 언어개혁을 단행해 현대 터키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도록 함에 따라 사어가 됐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또 필수 교과인 종교 수업을 시작하는 학년을 초등학교 4학년에서 1학년으로 낮췄고, 고등학교의 종교 수업 시간을 주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렸다. 나아가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하피즈’(쿠란을 전부 암기하는 사람)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2년간 휴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권고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신이나 천국, 지옥 등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반대 의견들이 많이 나왔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안건은 가결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시 이슬람권의 과학과 역사, 문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터키 학생 모두가 아인슈타인은 알지만 무슬림 과학자들은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제적인 종교 교육으로 극단주의 확산 우려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지난해 2월 터키 알레비파가 종교 수업을 필수교과에서 제외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종교 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은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ECHR의 판결을 비난하면서 “학교의 종교교육이 마약중독과 테러리즘, 폭력, 인종차별, 반(反)유대주의, 반이슬람 정서 등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고 맞섰다. 터키 고등법원 역시 지난해 6월 “학생들 자신의 종교, 철학적 신념과 관계 없이 특정 종교와 관련한 교과과정을 강제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판결했지만,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맘 하팁 추가 전환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슬람주의 교육을 통해 터키 내 극단주의적 시각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실제 터키 여론조사기관 메트로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이슬람을 모욕하는 자에게 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응답자가 2014년 12%에서 지난해 20%로 증가했다. 퓨리서치센터가 두 달 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가운데 8% 가량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호의적이다’고 대답했고, 19%가 ‘아직 IS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맘 하팁 졸업생 단체인 ‘온더르’의 후세인 코르쿠트 회장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이맘 하팁은 이를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서 “졸업생들 중에서 알카에다나 IS에 가입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종교 교육이 강제되고 있는 터키의 현실이 극단주의 세력이 창궐한 이라크나 시리아의 교육 실정과 다름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라크에서는 IS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비무슬림에 대한 투쟁’을 주제로 수업을 강행하고 있고,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누스라 전선도 샤리아(이슬람 법) 학교를 만들어 근본주의 이념을 주입시키는 중이다. 터키 교육개혁이니셔티브(ERG)의 바투한 아이다길 소장은 현지 후리옛데일리뉴스와 인터뷰에서 “비판적 사고 능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학생들에게 종교적 지식을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특히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깃들게 해 극단주의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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