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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다원주의 vs. 공화주의

입력
2017.10.29 14:5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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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안건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의 서로 다른 선호와 의견으로부터 사회적 합의 혹은 공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다원주의 관점과 공화주의 관점으로 대별된다. 먼저, 다원주의(pluralism)는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구성원들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상태에서 각자 자신의 선호에 따른 의견을 표출하고 그 의견들이 다원주의적 정치과정을 거쳐 결집된 결과를 공익적 가치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전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정해진 공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원주의적 정치과정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개인이 어느 상황에서나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아울러 그렇게 표현된 정치적 주장이 최종적 가치결정에 충분히 그리고 정합적으로 반영되도록 할 정치제도가 완비돼야 한다. 선거제도, 투표제도, 다수결원리, 위임입법의 법리, 정당제도 등이다. 그러나 다원주의적 정치과정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에 따른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다.

우선, 그 사회의 정치제도가 다원주의의 가치를 반영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설계되어 있지 않거나 설계된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않거나, 현안에 대한 소수자의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러한 정치과정을 거쳐서 도출된 결론이 공익적 가치를 충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다원주의적 정치과정에서 이익집단 등과 같은 파당(faction)의 영향력이 과다하게 작동하는 경우라면, 그렇게 도출된 결론은 그 공동체의 진정한 공익적 가치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한편, 공화주의(republicanism)는 사회의 진정한 공익적 가치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원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공화주의에서의 진정한 공익적 가치는 공동체 발전과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덕성(virtue)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진지하게 숙고심의(deliberation)하는 과정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화주의적 관점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덕성’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덕성을 갖춘 사람들은 어떻게 선별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선별된 대표자로서 덕성을 갖춘 사람들 사이의 숙고심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를 두고 여러 가지 논란과 비판이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한 덕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왜곡된 선별의 과정을 거쳐서 진정한 공익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는 결론을 도출하고, 그렇게 도출된 결론이 민주주의 과정이 요구하는 절차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공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을 속박하는 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

신고리 5ㆍ6호기의 공사중단 여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공론화위원회의 공론화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ㆍ6호기 공사의 재개, 원자력발전의 축소, 원전의 안전기준 강화 등의 공론화 결과를 정책에 반영할 것을 권고하였다. 공론화위원회의 발표가 이루어진 직후 정부는 권고안의 내용대로 정책을 집행할 것을 선언하였다.

만약, 앞으로도 원자력발전의 지속여부와 같이 대한민국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사안을 이러한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 이번 정부의 입장이라면, 그것이 앞에서 살펴본 다원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의 각 관점에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각 관점을 따르는 경우 가능한 실패의 가능성에 대한 대책은 얼마나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따른 정부의 결정이 사후에 잘못된 것이라고 판명되었을 때 그 정치적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에 관해서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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