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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린 내한공연... "내가 알던 밥 딜런은 그 곳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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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린 내한공연... "내가 알던 밥 딜런은 그 곳에 없었다'"

입력
2018.07.29 14:38
수정
2018.07.29 19:5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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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수 밥 딜런이 2012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하는 모습. 지난 27일 서울에서 열린 공연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 AP연합뉴스
미국 가수 밥 딜런이 2012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하는 모습. 지난 27일 서울에서 열린 공연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 AP연합뉴스

1972년쯤이었을까. 서울 광화문에 있던 미국문화원을 찾아갔다. 김민기, 두나래 등 대학생들이 공연한다고 했다. 이들은 ‘블로잉 인 더 윈드’ 등을 불렀다. 이때 미국 가수 밥 딜런의 음악을 처음 접했다. 아니, 그때는 딜런의 노래인 줄 몰랐다. 미국 포크 그룹 피터 폴 앤드 매리의 히트곡인 줄 알았다가 곡에 빠져 원곡자가 딜런이란 걸 나중에 확인했다.

딜런은 내게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 같은 존재였다. 혁명에 가까운 노랫말로 날 일깨웠다. 정치인들에 “문 앞을 가로막지 말고 회관을 봉쇄하지 마라”(‘더 타임스 아 데이 아 체인징’)며 저항을 악보 위로 끌어 올린 그 아찔함. 그래서 300원 하던 자장면 값의 세 배를 웃돌던 딜런의 ‘빽판’(불법 복제된 음반)을 사 모았다. 그리곤 그의 노래 ‘어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소낙비’ 등으로 번안해 앨범(‘넋두리’ㆍ1974)까지 냈다.

그렇게 45년여가 흘러 지난 27일. 딜런의 공연을 한국에서 보게 된다니. 그에게 줄 편지를 썼다. 허락 없이 당신의 노래를 번안해 불렀다는 뒤늦은 사과와 존경을 담아서. 편지와 그의 노래를 번안해 실은 앨범을 들고 딜런의 공연장인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내한 공연 기획사 직원에게 딜런에게 줄 편지와 CD를 준 뒤 객석에 앉았다. 명동에 있던 음악감상실 내슈빌에서 딜런의 우드스톡 공연 영상을 보며 만족해야 했던 내겐 꿈 같은 일이었다.

밥 딜런의 이번 내한 공연 포스터. 파파스이엔엠 제공
밥 딜런의 이번 내한 공연 포스터. 파파스이엔엠 제공

자줏빛 커튼이 쳐진 무대엔 백열등이 쏟아졌다. 아득함이 밀려오자 딜런이 무대에 올랐다. 첫 곡 ‘올 어롱 더 와치 타워’로 추억 여행이 시작됐다. 다음엔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였다. 그의 멜로디를 빌려 내가 ‘역’으로 다시 불렀던 곡을 같은 공간에서 딜런과 즐기게 되다니.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까지 듣고 나니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누군가를 각성시키는 목소리의 힘. 여든을 앞둔 노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칼칼했다. 눈이 잘 안 보여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내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공연 열 여덟 번째 곡으로 ‘가타 서브 섬바디’가 나올 때까지 ‘심플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 ‘어니스트 위드 미’ 등 낯선 곡이 쏟아졌다. 앙코르곡으로 ‘블로잉 인 더 윈드’를 불렀지만 편곡이 심해 원곡의 정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공연 중반 아홉 번째 곡이 흐를 땐 7,000여 관객의 반응이 너무 좋아 오히려 당황했다. ‘메이크 유 필 마이 러브’란 노래였다. 1997년 딜런이 낸 곡이었는데, 영국 가수 아델이 리메이크해 요즘 젊은이들에게 더 유명해졌다고 했다. 딜런이 기독교에 심취해 낸 가스펠 앨범 ‘슬로우 트레인 커밍’(1979)에 실망해 난 한동안 딜런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 ‘원더 보이즈’(2000)에 실린 ‘싱스 해브 체인지드’ 등을 틈틈이 챙겨 들었다. 그간 너무 딜런과 멀어진 건가. 딜런은 나와 젊은 관객들에게 서로 다르게 읽히고 있었다.

딜런은 두 시간여의 공연 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고개를 돌리며 못 본 척 외면했나”(‘블로잉 인 더 윈드’)라며 노래했던 딜런 아니었던가. 공존을 노래했던 거장은 공연에서 뚝 떨어진 섬 같았다. 딜런 앤 히스 밴드의 합주도 마뜩잖았다.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내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국 공연. 내가 알던 딜런은 그곳에 없었다.

가수 양병집

가수 양병집은 밥 딜런의 노래 '어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1970년대 '소낙비'로 번안해 세상에 냈다. 양승준 기자
가수 양병집은 밥 딜런의 노래 '어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1970년대 '소낙비'로 번안해 세상에 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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