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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열의 과학책 읽기] 공기의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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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열의 과학책 읽기] 공기의 연금술

입력
2015.11.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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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연금술

토머스 헤이거 지음, 홍경탁 옮김

반니 발행ㆍ380쪽ㆍ1만8,000원

식물이 생장하는 데 필요한 원소가 많지만 핵심적인 원소라면 탄소, 산소, 수소, 질소 네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탄소는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수소와 산소는 뿌리를 통하여 물의 형태로 식물에 흡수된다. 문제는 질소다. 질소는 공기 부피의 78%를 차지하며 우주에서는 일곱 번째로 풍부한 원소다. 그런데 질소 기체는 반응성이 매우 낮다. 질소는 공기 중에 분자(N₂)의 형태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섭씨 1,000도 이상으로 가열해야 결합이 끊어진다. 식물이나 동물과 직접 반응하지 않아 흡수될 수도 없다. 식물은 질소가 환원되거나, 산화된 질소화합물만을 사용할 수 있다. 번개에 의해 공기 중의 질소와 산소가 질소산화물로 변해 비에 녹아 토양에 흡수될 수 있지만 그 양은 많지 않다. 식물은 토양에서 질소를 고정하는 콩과 식물의 뿌리혹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썩은 식물이나 동물의 배설물 등에도 고정질소가 풍부하지만 농사를 계속 지을 경우 이런 질소산화물은 쉽게 고갈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존의 농사 방법으로는 더 이상 식량 증산이 어려워 인류는 대량 기아사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남미의 초석이나 구아노 등 질산염 형태의 천연비료가 등장하였지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식량 수요를 감당하기는 턱없이 모자랐다. 토머스 헤이거의 ‘공기의 연금술’은 식량 증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원인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고정시키는 화학적 공정을 발명해 인류의 농업 생산에 획기적 전기를 이룬 독일의 두 천재 과학기술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독일의 과학기술사다. 오늘날 전세계의 하버-보슈공정이 작동을 멈출 경우 인류의 약 20억이 기아에 직면하게 될 정도라 하니 하버와 보슈의 발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독일계 유대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이 공로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하버의 연구를 바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화학 공정을 만들고 거대기업 BASF의 수장까지 오른 카를 보슈도 1931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문제는 이들이 대량생산한 암모니아가 화학 비료뿐 아니라 폭탄 원료인 질산으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의 발명은 독일이 일으킨 세계대전과 깊은 관련이 있다. 보슈가 주도해서 세워진 초대형 화학기업연합 파르벤은 히틀러가 2차 대전을 일으켰을 때 군수공장으로 전환되었으며 폭약만 아니라 수송에 필요한 합성가솔린을 만들어 전쟁 수행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 하버와 보슈만큼 논란이 많은 인물은 없을 것이다. 특히 하버는 유대인이지만 독일에 철저히 동화하는 길을 선택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1차 대전엔 독일의 승리를 위하여 독가스를 개발하기까지 한 문제의 인물이다. 히틀러는 그를 결코 독일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하버는 스스로 파멸하고 만다. 하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지만 보슈의 말년도 비극적이었다. 저자 헤이거는 이 두 사람을 미화하지도 악마화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그린다. 역사 속의 이 두 거인이 처했던 운명은 아마도 현대의 과학기술자들이 처한 모순의 가장 기괴하고 극단적인 형태였을 것이다.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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