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오바마의 길과 슈뢰더의 길

입력
2017.09.14 04:40
0 0

경고음 울리기 시작한 문 정부 선택은

보수 진보 모두에 발목이 잡힌 오바마

정치적 이득보다 국익 우선한 슈뢰더

미국 언론인 조너던 체이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어렵게 만든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집권 초기부터 공화당이 가지고 있던 오바마에 대한 강박적 두려움이다. 오바마의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 집권 가능성이 줄어들까 봐 전면적인 반대에 나섰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진보진영의 이상주의가 오바마에 대한 실망감을 만연시켰다고 한다. 퇴임 뒤에도 50% 넘는 지지율을 기록해 성공한 대통령으로 보이지만, 오바마는 정책에서 보수진영의 두려움과 진보진영의 이상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던 셈이다. 그마저 외교정책은 혁신적이기보다는 기존의 정책을 수정하는데 그쳤고, 기대됐던 북핵 문제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환경은 오바마가 처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가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을 신호로 보는 이들이 많다. 집권 5개월째인 문 정부는 내치에서 보수와 진보진영, 외치에선 한반도를 둘러싼 스트롱맨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뀌지 않은 여소야대의 틀은 정치가 연정과 협치 사이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진보진영의 비판은 더 아프다. 대통령이 임플란트 시술로 솜을 입에 물고 사드 배치 입장문을 쓴 것도 치통보다 더한 그 통증 때문일 것이다.

지지율은 아직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이마저 2년 전과 비교해 보면 믿을 게 못 된다. 당시 정당 지지율은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 40%대, 새정치연합(더불어민주당)은 20%대였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자 문재인 대표 체제의 야당에선 신당설, 대권분리론, 대권회의론까지 유행했다. 여론이 새누리당의 대안으로 새정치연합을 고려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있지만 그때는 정의, 공정,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이슈가 먹히지 않았고, 경제가 다른 모든 걸 압도했다.

이를 보면 앞으로 진실의 순간들이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그런 순간을 먼저 맞이했던 정치인으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있다. 방한한 사흘간 그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기업인 독자 언론인을 만나 많은 화두를 던졌다. 나눔의 집을 찾아가 안네 프랑크 액자를 전달하며 일제에 상처받은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연대감도 보여줬다. 슈뢰더는 네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이혼을 한 탓에 아우디 맨, 반지의 제왕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은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한 정치인이란 평가와 맞물려 있다. 입신양명에 매달리는 정치인들과는 다른 키다리 아저씨 인상의 그에게는 통 큰 정치인이란 수사까지 따라 다닌다.

이번 방한에서도 그는 “정치 지도자는 선거에 실패하더라도 국익을 추구하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거나 “지도자는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을 관철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경험이 담긴 충고를 남겼다. 슈뢰더는 좌파인 사민당 소속이지만 독일을 보다 앵글로색슨형 자본주의로 이끈 인물이다. 노동 유연성 확보 등이 담긴 하르츠 개혁을 밀어붙여 독일 경제를 유럽의 병자에서 구해냈다. 그의 개혁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10여년 간 노동자들의 급여는 많이 오르지 않았고 부의 배분도 불평등 했다. 중국을 뛰어넘는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 속에서도 국민 개인자산의 중간값이 스페인 이탈리아의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다. 결국 슈뢰더는 지지기반이던 노동계 반발로 총리 자리를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에게 넘겨줘야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대연정을 성사시켜 개혁의 연속성까지 확보하고 나서 물러났다. 외교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부시 정권에 대놓고 노(NO)를 외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나라다운 나라, 기본이 다져진 사회를 생각할 때 독일을 먼저 떠올리는 데에는 이런 슈뢰더의 공도 클 것이다. 오바마의 길과 슈뢰더 길, 많은 지도자들이 진실의 순간에 떠올려야 할 선택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tglee@hankookilbo.com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12일 청와대를 방문,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의 한국어판 자서전을 건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12일 청와대를 방문,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의 한국어판 자서전을 건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