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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노래가 공포였는데".... '낭만가객'반전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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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노래가 공포였는데".... '낭만가객'반전 40년

입력
2017.02.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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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최백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낭만가객'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가수 밥 딜런과 밴드 비틀스 멤버인 존 레논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아이고"라며 부끄러워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최백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낭만가객'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가수 밥 딜런과 밴드 비틀스 멤버인 존 레논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아이고"라며 부끄러워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노래 못해” 놀림 당해 미술 학도 꿈꾼 ‘부산 소년’

“하하, 저게 뭐야?” 중학생이던 소년은 음악시간에 가곡을 부르다 망신을 당했다. 허스키한 목소리 탓이다. 하도 친구들한테 노래 못한다는 놀림을 받다 보니 사춘기 소년에 노래를 부르는 일은 ‘공포’가 됐다. “난 음치”라는 두려움을 품고 살던 그는 미술반에 들어가 붓을 잡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미대 진학을 포기한 사내는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부산 서면에서 친구 매형이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 ‘나들이’에서다. 스물 셋이 되던 1973년 일이다. 통기타를 잡고 그룹 트윈폴리오의 노래를 부르던 청년은 부산문화방송 PD이자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던 배경모씨 눈에 띄어 상경했고, 시대를 초월한 ‘낭만 가객’이 됐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람인데…” 2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창작 공간 ‘뮤지스땅스’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가수 최백호(67)는 “우연과 우연이 이어져 만든 기적 같은 시간”이라고 웃으며 지난 40년을 추억했다.

“ ‘낭만에 대하여’는 설거지 하는 아내 뒷모습 보고 쓴 곡”

1977년 낸 노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한 최백호는 올해 가수 인생의 불혹을 맞았다. 1995년 발표한 ‘낭만에 대하여’가 대표 곡이다. 그의 쓸쓸한 음색을 타고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라고 시작되는 정겨운 가사가 백미다.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점심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쓴 노래”다. “문득 ‘첫사랑은 나이 들어 어떤 모습일까’란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바로 거실에서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란 가사를 악보에 옮겼다. 가사를 완성하는 데 “거짓말 같지만 두 시간 밖에 안 걸렸다”고 했다.

이 노래는 김수현 작가가 우연히 차에서 라디오로 듣고 반해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6)에 삽입해 큰 인기를 누렸다. 그의 또 다른 노래 ‘길 위에서’를 배우 유동근이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2015)에서 울면서 불러 화제가 된 뒤 그의 노래는 고개 숙인 중년의 송가가 됐다. 최백호는 “‘내가 늙어가는 구나’를 깨달은 40대에 쓰고 부른 노래라서 더 공감을 산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어려서 외면 받던 거칠고 조숙한 목소리에 세월이 켜켜이 쌓여 곡과 이야기에 낭만이란 살이 붙은 덕이다.

결핵, 이민… ‘낭만가객’의 산전수전

산전수전을 겪고 난 뒤에야 상처뿐인 삶에 굳은 살이 돋았다. 최백호는 군 입대 후 결핵으로 의가사 제대 한 뒤 인생의 늪에 빠졌다.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라, 아픈 그를 돌봐 줄 이도 없었다. 그는 결핵 환자에게 나온 정부 보상금 11만5,000원을 들고 경남 일광해수욕장 인근에 가장 싼 방 한 칸짜리 집을 구해 2년 동안 홀로 살았다. 고난은 계속됐다. 1집을 낸 뒤 ‘너를 사랑해/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1981)와 ‘작은 연가’(1987) 등의 노래가 잇따라 빛을 보지 못해 미사리 카페 촌에서 노래하며 갖은 모욕을 당했다. “손님이 수박을 던져 얼굴에 맞기도” 하는 등 밤업소 생활에 회의가 쌓여 “가수를 그만 둘 생각”으로 198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돌아와 다시 가수 인생을 이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 가장 큰 계기이자 최대의 위기였죠.”

백발의 가수는 '만화광'이다. 독립 음악인을 위한 창작공간 '뮤지스땅스' 대장인 최백호는 소장한 만화책을 방문객과 공유한다. 책꽂이에 써둔 메모가 마치 소녀의 필체처럼 귀엽다. 양승준 기자
백발의 가수는 '만화광'이다. 독립 음악인을 위한 창작공간 '뮤지스땅스' 대장인 최백호는 소장한 만화책을 방문객과 공유한다. 책꽂이에 써둔 메모가 마치 소녀의 필체처럼 귀엽다. 양승준 기자

화가이면서 영화감독 꿈꾸는 ‘백발의 만화광’

“역마살이 세다”는 그의 농담처럼, 그의 예술적 행보도 널을 뛰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내달 뮤지스땅스에서 개인전을 연다. 직접 그린 25점을 내놔 수익은 모두 독립 음악인을 지원하는 발전기금으로 쓸 예정이다. 신인 음악인 육성을 위한 공간인 뮤지스땅스를 4년 째 이끌어 오고 있는 그는 미사리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삶을 다룬 시나리오를 직접 써 영화감독 데뷔도 준비하고 있다.

백발이 된 가수의 취미는 만화책 수집이다. 김산호 만화가의 ‘라이파이’를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내 노래의 원동력의 8할이 만화”라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는 ‘슬램덩크’를 비롯해 ‘몬스터’ ‘파이브 스타 스토리’ 등 직접 모은 만화책을 뮤지스땅스 서재에 꽂아 두고, 관람객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가수 인생 불혹’ 맞아 ‘불혹’ 앨범 내고 공연 열고

웹툰도 즐긴다는 최백호는 내달 중순에 낼 40주년 기념 앨범 ‘불혹’의 프로듀싱도 까마득한 후배인 에코브릿지에 맡겼다. 앨범 발매에 앞서 23일 선 공개될 신곡 ‘바다 끝’도 에코브릿지가 작사·작곡한 노래다. 그의 목소리로 울림은 주면서도, 젊은 음악인들의 감각을 빌어 곡에 새 옷을 입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최백호는 ‘불혹’에 직접 쓴 두 개의 신곡도 넣는다. 이중 ‘하루 종일’은 “나이가 들어 요양원에 다니는 선배를 보고 마음이 짠 해져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에” 쓴 노래다. 최백호는 내달 11~1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앨범 제목과 같은 주제로 공연을 연 뒤 12월까지 전국투어를 이어간다. 이를 위해 일흔을 앞둔 노장은 “매일 한 시간씩” 노래 연습도 한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지 않는 게 불혹이잖아요. 부대끼며 살았지만 이젠 노래를 욕심 없이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제 팬들에겐 ‘자기 노래를 충분히 즐기고 간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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