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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물관리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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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물관리의 정치

입력
2018.05.29 19: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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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은 강 유역을 기반으로 일구어졌다. 문명은 사람들이 물의 혜택을 십분 활용한 결실인 셈이다. 물의 편익을 얻기 위한 사람들의 욕심이 통치 권력으로까지 작용했던 게 인류의 주요 정치사다. 고대 중국에서 ‘물의 다스림(治水)’을 치자의 덕목으로 삼았던 것이 그러하다. 위민정치를 펼친 조선의 영조는 청계천 준천을 독려하는 현장에서 손자 정조에게 통치 노하우를 전수했다. 청계천 복원으로 재미를 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반도 대운하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어떤 목적으로 물의 편익을 얻으려 하고, 물의 가치를 지키려 하느냐에 따라 물의 자연성은 달리 규정된다. 이는 한 나라의 물관리 역사를 차별화한다. 한국의 물관리는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수량ㆍ수질 부문으로 이원화했고, 담당 부처도 국토부와 환경부로 나뉘었다. 수량은 물을 자원으로 보고 경제적 이익을 위한 개발 대상으로 보는 입장이고, 수질은 물의 생태성을 주목하고 그 가치의 보전을 우선시 하는 입장이다. 지난 30년의 물관리 역사는 수량과 수질로 분리된 역사이자 통합을 추구해 온 역사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물 통합관리’ 혹은 ‘물관리 일원화’란 이름으로 물관리 통합화가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물 통합관리는 두 부문의 단순 통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국토부의 수량 관련 관리업무를 환경부로 몽땅 넘기는 것을 전제한다. 환경부 중심으로 물관리 일원화를 하는 것이 물 통합관리의 주된 내용이다. 이러니 넘겨야 한다는 입장과 넘겨주지 않으려는 입장 간 대립이 부처 간 주도권 다툼을 넘어 정파간, 집단간 정치적 다툼으로까지 확장됐다. 이런 가운데, 물 관련 중복투자와 개발중심의 하천관리로 인한 폐해가 속출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그 백미다. 지난 ‘물관리 30년’은 개발세력에 의해 물관리가 독점된 채 물의 생태적 가치가 배제되고 억압돼 온 시간에 다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환경부로 물관리를 일원화하는 ‘물 통합관리’를 최우선 국정과제의 하나로 추진해왔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는 28일 본회의를 열어 물관리 기본법 등 물관리 일원화 관련 3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지난 30년간 지속된 물관리 이원화는 종지부를 찍는 듯하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통과된 정부조직법에 하천법을 국토부에 남기기로 한 내용이 들어감으로써 물관리 일원화가 반쪽이 됐기 때문이다. 국가ㆍ지방 하천의 유지ㆍ정비ㆍ보수와 하천 관련 중장기 국가계획 등은 모두 하천법이 다루고 있어 물관리 일원화를 통해 이루려던 4대강 재자연화는 사실상 요원하게 됐다.

이렇게 된 까닭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국토부와 환경부의 힘겨루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 이유는 물과 하천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른 여야 간 정치적 타협이다. 자유한국당은 물관리 일원화를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간주하며 환경부로의 하천관리권 이양을 반대했다, 반면 대통령 공약을 실현해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 요구(하천법을 국토부에 남기기)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물관리 일원화를 허용해야만 했다. 법은 통과됐지만 물을 둘러싼 개발주의 입장과 보전주의(생태주의) 입장의 대립은 계속 남게 됐다.

물관리의 정치는 계속되지만 그 전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이번에 통과된 ‘물관리 기본법’은 물과 관련된 여러 법률에 대한 최초의 상위법으로 제정된 것이어서 그와 관련된 분쟁이나 상충되는 부분을 해소시켜주는 법적 근거가 된다. 따라서 하천법이 국토부에 남아 있더라도 물관리 기본법이 부여하는 상위법적 권한으로 환경부는 하천의 친환경적 관리를 관철할 수 있게 됐다. 물관리의 정치에서 주도권이 환경주의자들에게로 옮겨온 셈이다. 물을 둘러싼 진정한 녹색정치가 기다려진다.

조명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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