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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주트 수트 폭동

입력
2018.05.31 04: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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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청년들이 입은 정장이 주트 수트다. wikipedia.org
194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청년들이 입은 정장이 주트 수트다. wikipedia.org

1930, 40년대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인물들이 더러 입고 나오는 정장으로 주트 수트(Zoot Suit)라는 게 있다. 코트라 해도 될 만큼 품 넓고 어깨에 두툼한 패드를 댄 상의와 허리까지 올라오는 통 넓은 바지가 특징이다. 그들은 대개 챙 넓은 모자와 프랑스풍의 신사화를 신고, 체인 시계줄을 무릎까지 길게 늘어뜨리곤 했다. 주트 수트는 당시 멕시코계와 아프리카계, 이탈리아계 등 ‘비 정통’ 미국인들이 즐기던 패션이었다. 1943년 5월 3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른바 ‘주트 수트 폭동’이 시작됐다. 사연은 이랬다.

2차대전이 한창이라 인력도 부족했지만 생필품도 달려서 옷감 등 주요 품목은 배급제가 시행되던 때였다. 42년 3월 미 전시생산위원회는 옷감 낭비가 심하고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주트 수트 생산을 금지했다. 물론 그 조치는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LA는 해외 파병 군인들이 나고 들던 주력 항구였다.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들 눈에 주트 수트 ‘건달’들이 좋게 보였을 리 없었다.

42년 8월 어느 날 멕시코계 주트 수트 청년들이 벌인 파티에 참석해 놀던 한 청년이 숨진 채 발견됐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눈엣가시였던 그들을 소탕하는 데 그 사건을 이용했다. LA경찰국의 대대적 단속이 시작됐다. 주 타깃은 멕시코계였고, 언론도 적극 호응했다. 경찰은 17명을 체포, 그 중 7명을 2급 살인혐의로 기소했다.(그들은 44년 10월 모두 무죄로 석방됐다.) 그런 분위기여서 백인 청년들-특히 군인들-과 주트 수트 이민자들간의 다툼도 빈번했다.

5월 어느 날 그런 충돌이 있었다. 경찰은 노골적으로 이민자들을 차별했고, 분노한 주트 수트들과 이민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폭동은 약 일주일 간 이어졌다. 숨진 이는 없었지만 150여 명이 다쳤다. 경찰은 500여 명을 연행했고, 대부분 멕시코계 미국인이었다.

사건 직후 주 의회 시민위원회는 사건의 본질을 경찰이 동조한 ‘인종 차별’이라 밝혔지만, LA시 당국은 보고서를 묵살했고 당시 기세등등하던 매카시의 ‘비미활동위원회(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는 나치가 사주한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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