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강 기자

김주영 기자

등록 : 2017.12.21 04:40
수정 : 2017.12.21 10:01

산타가 목욕탕 굴뚝에 오른 까닭은?

[View&]'아니 땐 굴뚝'의 변신

등록 : 2017.12.21 04:40
수정 : 2017.12.21 10:01

동네 공중 목욕탕이 사라지면서 덩그러니 남은 굴뚝의 초상은 처량하다. 드물긴 해도 눈에 잘 띄는 위치와 모양 덕분에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받은 굴뚝도 눈에 띈다. 15일 인천 동구 송림동의 한 원룸 주택 굴뚝에 산타클로스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본 산타클로스와 굴뚝. 건물주 정모(64)씨는 “조형물 덕분에 쓸모 없는 굴뚝이 동네 명물이 됐다”고 말했다.

원래 목욕탕이던 인천 동구 송림동 건물이 원룸주택으로 개조되면서 덩그러니 남은 굴뚝이 산타 조형물의 일부로 재 탄생 했다.

주택 난방ㆍ목욕탕 굴뚝

본래 쓰임새 다 했지만

철거비용 탓 도심 곳곳에 남아

조형물ㆍ간판 등 변신

고공농성 노동자에겐 ‘하늘 감옥’이기도

지난 15일 인천 동구 송림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굴뚝을 오르는 산타클로스가 목격됐다. 성탄절이 아직 열흘이나 남았는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 선물 꾸러미를 메고 몰래 ‘침입’하다 딱 걸린 산타 할아버지, 많이 당황하셨어요?

눈치 챘겠지만 목욕탕 굴뚝에 매달린 산타클로스는 조형물이다. 그가 매달린 굴뚝 역시 조형물이나 다름없다. 지난 20여 년 동안 쉴새없이 연기를 내뿜어 오다 2년 전 목욕탕 영업 종료와 함께 ‘아니 땐 굴뚝’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당시 건물을 인수해 원룸주택으로 개조한 정모(64)씨는 “굴뚝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철거하자니 비용이 엄청났고 노후한 건물 탓에 작업상 안전도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자니 왠지 흉물스러워 보였다. 고민 끝에 산타클로스 조형물을 설치했는데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정씨는 “다들 우리 집을 ‘산타 굴뚝집’으로 부른다.쓸모 없는 굴뚝이 동네 명물이 됐다”며 웃었다.

#1 목욕탕 굴뚝의 변신

진짜 산타클로스의 방문은 다가올 성탄절을 기대하기로 하고 굴뚝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 볼까 한다. 예전엔 동네마다 공중 목욕탕 한 곳쯤 다 있었다. 대부분 기름 보일러를 쓴 데다 여과장치의 성능도 떨어지다 보니 굴뚝에선 항상 회색 연기가 피어 올랐다. 주거 환경 변화와 유가 인상으로 폐업하는 목욕탕이 점차 늘면서 그 자리에 원룸, 게스트하우스, 식당이 들어섰고 옥상엔 기다란 굴뚝만 유물처럼 남았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목욕탕도 연기 배출이 거의 없는 전기, 가스 보일러를 쓴 지 오래니 굴뚝의 존재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켜 온 목욕탕 굴뚝 중엔 드물지만 새로운 쓰임새를 얻은 경우도 있다. 2년 전 서울 용산구의 옛 목욕탕 건물에 입주한 음식점 업주 김모(39)씨는 “굴뚝을 보자마자 홍보물 겸, 간판 겸 칠을 하고 그림도 그려야겠다고 맘먹었다”고 했다. 얼마 후 탄생한 굴뚝 간판은 영업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명실상부한 ‘동네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밖에 사라진 목욕탕 상호 옆면에 병원 간판을 달거나 수년간 굴뚝을 간판으로 쓰던 동네 마트가 폐업하면서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되돌아온 경우도 있다.

용산구 한 음식점의 굴뚝 간판. 목욕탕이 폐업하면서 쓸모 없어진 굴뚝에 칠을 하고 그림을 그렸다.

성북구 월곡동의 한 병원 간판. 역시 폐업한 목욕탕 굴뚝 한 면에 간판을 걸었다.

아파트 단지 내 굴뚝을 두고 역사의 흔적인 만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 9월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심의 통과 시 단지 내 굴뚝의 보존을 조합에 요구했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 단지에 세워진 중앙난방용 굴뚝. 대부분 아파트 단지가 지역 또는 개별난방으로 갈아타면서 과거 배기통 역할을 했던 거대 굴뚝이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2 보존이냐 철거냐, 아파트 단지 내 거대 굴뚝

오밀조밀한 동네 골목을 나서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수십 m 높이의 거대한 굴뚝과 마주친다. 1970~1980년대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면서 중앙난방으로 발생한 유해물질 배출용으로 세워졌는데 큰 것은 높이가 70여m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파트가 지역 또는 개별난방으로 갈아탄 지금 굴뚝은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서울 노원구만 해도 이러한 굴뚝 60여개가 남아 있다. 

아파트 굴뚝이 우리 주거환경의 발전상을 보여 주는 역사의 흔적인 만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9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심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단지 내 굴뚝 보존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내구 연한, 지진 시 안전성 등을 고려할 때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그러나 굴뚝 한 개당 최대 2억원에 달하는 철거 비용은 걸림돌이다. 임대아파트 굴뚝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국토해양부가 비용을 부담하지만 민간 아파트는 장기수선충당금, 즉 주민 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철거가 쉽지 않으니 역사의 흔적으로 변신한 굴뚝의 모습도 당분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고공농성 노동자의 ‘하늘 감옥’

산타클로스만 굴뚝을 오르는 건 아니다. 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도 꿈쩍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은 ‘산업화의 상징’인 굴뚝에 올랐다. 그들에게 굴뚝은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생존의 전쟁터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공장 굴뚝에 올랐고,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은 단지 내 굴뚝에 올라 부당해고 철회를 외쳤다. 

그리고 지금 75m 높이의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선 금속노조 파인텍 지회 소속 노동자 2명이 농성 중이다. 20일로 39일째 사측에 단체협약 체결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하늘 감옥’에 가둔 지 44일째 되는 날은 성탄절이다. 만약 산타클로스가 있다면 굴뚝 위 노동자들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견뎌 낼 용기와 담요 한 장 선물로 두고 가길 소원해 본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금속노조 파인텍 지부 소속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높이 75m의 ‘하늘 감옥’에 스스로 갇힌 그들은 사측이 2년 전 약속한 단협 체결을 촉구하고 있다.

마포구의 한 목욕탕 굴뚝. 한때 건물에 입주한 동네 마트가 간판으로 사용하다 마트가 폐업하면서 또 다시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남았다.

18일 용산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굴뚝 뒤편으로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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