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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비 시시콜콜 따져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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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비 시시콜콜 따져봐야 하는 이유

입력
2015.06.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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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사무소, 내 땅도 네 땅도 아닌 공유지

주민을 위해 일한다지만, 점차 자기 편하게 일하기 마련

제대로 감시하려면, 회계사 선정 주체가 관리소

구조적으로 부정 적발 쉽잖아… 주민의 깐깐한 의지가 관건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길을 걷다 보면 전봇대 아래나 공터 등에 쓰레기봉투나 재활용품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요. 이런 곳은 동네 주민들이 쓰레기를 모아 내놓는 곳으로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소는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구네 집 앞'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모호하고 어정쩡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이 곳들이 쓰레기 배출 장소가 되는 이유는 '공유지'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땅도 아니고 네 땅도 아닌 모호한 곳이라는 건데요. 그런 곳에는 늘 쓰레기가 쌓이기 마련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걸 '공유지의 비극'이라고도 하죠.

경제학에는 '대리인 비용'이라는 개념도 있는데요.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면 그 사람은 일을 시킨 나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하기 편한 쪽으로 일을 하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내가 혼자 먹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고르면 이것 저것 따져보게 되지만, 사장님이 "직원들 나눠주게 아이스크림 50개만 사와라"고 시키면 그냥 가까운 가게에 가서 아무 아이스크림이나 막 골라 집게 되죠. 사장님은 나에게 대리인 비용을 치른 셈입니다.

우리가 매월 내는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는 이런 공유지의 비극과 대리인 비용이 모두 발생하는 곳입니다. 아파트 관리비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고지서를 발부하고 관리하지만 관리사무소는 주민들의 돈을 말 그대로 관리만 하는 곳입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어떤 곳인지는 관리사무소에 가서 이런 질문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1년 동안 낸 아파트 관리비에 대해 현금영수증을 해 주실 수 있나요?" 아파트 관리비로 자동 이체된 돈을 다 모아서 현금영수증을 받으면 금액이 꽤 될 테니까요. 그러나 아파트 관리비는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습니다. 관리비를 신용카드로 내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영리업체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동창회나 산악회 회비를 모임 총무에게 내면서 신용카드로 내겠다고 하거나 현금영수증 발행을 해달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아파트 관리를 위해 주민들이 '자기들끼리' 모아서 쓰는 일종의 회비 같은 겁니다.

대부분 학교 동창회 회비가 어떻게 쓰이는 지 관심이 없듯이 아파트 관리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스스로 챙겨보지 않으면 아무도 관리해주지 않습니다.

실제 아파트 관리비만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없습니다. 서울시가 2010년에 서울의 2,000여개 아파트들의 관리비를 조사해본 결과 상위 10%의 관리비는 ㎡당 1,385원이었는데 하위 10%의 평균 관리비는 447원이었습니다. 아파트 관리비의 용처가 어느 아파트든 대부분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리비를 알뜰하게 쓰는 아파트와 흥청망청 쓰는 아파트의 차이가 꽤 크다는 걸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비가 흥청망청 쓰이는 사례는 꽤 많지만 대부분은 싸게 살 수 있는 걸 비싸게 사고 그 차액을 리베이트로 받아 챙기는 겁니다. 관리사무소장이 챙기는 경우도 있고, 관리사무소 직원이 챙기는 경우도 있고, 그런 관리사무소장을 감시하라고 만들어놓은 아파트 입주자회의 대표들이 챙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관리비는 연간 12조원에 달할 만큼 규모가 큽니다. 우리나라 주택의 70%가 공동주택이니 그럴 만도 하죠. 지금까지는 아파트 관리비는 동창회비나 산악회 회비 관리하듯이 주민들이 알아서 들여다보거나 말거나 방치했지만 정부도 아파트 관리비가 제대로 관리되는 지 슬슬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부터 300가구 이상 아파트단지는 회계사로부터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회계감사만 받게 하면 관리비가 제대로 관리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회계감사라는 것은 관리비를 쓰면서 영수증을 제대로 갖춰놓았는지, 그래서 장부상 잔고와 현재 관리비 통장에 들어있는 잔고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보일러 수리를 5,000만원 주고 했으면 5,000만원을 지급했다는 영수증이 있는지 확인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 보일러 수리비용은 1,000만원인데 수리업체에 5,000만원을 지급하고 관리사무소장이 리베이트로 수천만원을 받았다면 그건 회계감사에서도 적발하기 쉽지 않습니다. 관리사무소 장부에는 5,000만원짜리 영수증이 당당하게 붙어 있을테니까요.

아파트 회계감사를 어떤 회계사에게 시킬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관리사무소장이나 입주자대표회의라는 점도 아파트 회계감사 의무화 제도를 머쓱하게 만듭니다. 관리사무소장이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부른 회계사가 관리사무소장이나 입주자대표회의의 부정이나 비리를 적발할 수 있을까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아파트 관리비의 문제는 결국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시시콜콜 따져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화단 관리에 300만원을 썼다면 뭘 하는데 그렇게 썼는지 다른 업체들과 비교는 해봤는지 챙겨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마련한 공동주택관리시스템(k-apt.go.kr)은 그런 일을 도와주는 기초적인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들어가보면 다른 아파트의 관리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알 수 있는데요. 우리 아파트와 비슷한 규모의 다른 아파트들은 관리비를 얼마나 쓰는지 비교할 수 있게 해놨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여기까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진우 경제방송 진행자

경제뉴스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숫자 때문이기도 하지만, 뉴스 속에 '왜(why)'가 제대로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밥상을 차리다 말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만 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양파가 매워서인지 갑자기 친정 엄마 생각이 나서인지 그 이유를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죠. 경제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뉴스 속에 숨어있는 이유와 맥락을 찾아서 친절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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