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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랑 발굴단

입력
2016.09.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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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볼까 봐 문 닫아걸고 먹는다는 가을 아욱국을 끓이려고 아욱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줄기와 잎사귀 사이에 연한 보랏빛 작은 꽃봉오리가 숨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그 순간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것’이라는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면서 처음으로 열무나 아욱, 배추나 쑥갓의 웃자란 줄기 끝에 작고 소박하고 희미한 꽃들이 피는 것을 보았다. 장미나 백합 같은 꽃들 옆에 갖다 놓으면, 설마 꽃인 줄도 모를 꽃들. 줄기와 잎사귀들이 일찌감치 뽑히고 꺾이는 바람에 봉오리가 맺히고 꽃잎이 열릴 기회도 없이 사라지는 꽃들. 게으름 덕분에 그 꽃들을 발견하고, 비로소 그 꽃들을 사랑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사랑 발굴단’을 자처하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 어릿광대 같은 호칭이잖아요. 이따금 그렇게 그를 놀리곤 했지만, 그가 조곤조곤 진지하게 하는 말에는 솔깃한 면이 있었다.

추한 것을, 무례한 것을, 염치없는 것을 매력으로 삼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거든요. 매력은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서, 요즘에는 대놓고 욕을 퍼붓고, 눈앞에서 혐오를 드러내고, 뻔뻔스럽게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쉽게 차이를 만들려고 애써요. 그러다 보니 잘 드러나지 않는 곱고 순한 것들이 자꾸 사라져요. 자극적인 매력 하나가 나타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매력 하나가 사라져요. 반짝이는 예쁨 하나를 얻을 때마다, 묻혀 있는 예쁨 하나를 잃어요. 매력은 발굴하는 사람의 몫이어야 하거든요. 강요하고 발산하는 매력은 오염되고 변질되고 말아요. 대가를 요구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아니, 그런 대가가 아니라요. 모두 망가져 버리는 거 말이에요. 한참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문득 납득했다. 사랑을 발굴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매력을 발굴하는 일이로구나.

그때 마침 우리는 퇴락해가는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가였지만, 서울이 광기에 가까운 속도로 팽창하여 여러 핵심으로 분열하고 난 뒤, 오랫동안 한적한 상태로 남아있던 동네였다. 방치된 건물과 도로들은 시간의 힘에 의해 모서리가 닳고 표면이 허름해져,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일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저 집, 예쁘지 않아요? 인간의 아기들은 태어날 때 이름도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밑그림 위에 슬쩍 얹혀 있는 하품 같은 운명으로 세상에 나와요. 사물들도 다르지 않아요. 새로 지은 건물, 새로 닦은 도로, 그것들로 이루어진 거리들은 온전한 자기 자신이 아니에요. 반듯반듯하고 번쩍번쩍할 때는 아직 제대로가 아니에요. 죽음이, 종말이, 끝이 그 모든 것들을 이끌고 나아가 온전한 자기 자신에 다다를 때, 그래서 끝이 보이는 시점에 서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지요.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한 빛으로 노랗게 물들기 시작해야 본질이 드러나게 되는 것처럼. 그런데 저기 보이는 집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요? 집을 하나 얻는 것은 신드바드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운 좋게 서너 평짜리 양탄자 위에 올라탈 수 있으면, 세상을 향해 모험이라도 떠나게요. 사랑을 발굴하러.

물론,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것이다. 수줍고 여린 꽃들을 알아보게 된 뒤부터 나는 일부러 텃밭 한 귀퉁이에 열무나 배추 몇 포기, 쑥갓 한두 줄기를 남겨 놓곤 했다. 어느 날 기척 없이 피어난 꽃이 바람에 흔들리면 조심스레 아끼며 바라보고 싶어서. ‘사랑 발굴단’은 그저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일까. 허름함과 한적함조차 매력으로 반짝이게 만드는 시대라 해도, 그래서 너무 많은 매력들로 넘쳐흐르는 곳이라 해도, 사랑을 발굴하려는 이의 자리 하나쯤은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그가 숨겨져 있는 우리의 무엇인가를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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