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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송이 눈일진대

입력
2017.11.01 16:5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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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빠른 증가 경제위기의 뇌관

소득주도 성장으로 적자 메울 수 없어

섬뜩한 적폐타령 접고 미래 응시해야

카톡방에 결혼한 여자를 오리에 비유한 유머가 떠돈다. 빚지지 않고 알뜰하게 살림 잘하면 집오리, 벌어다 주는 돈 펑펑 쓰고 빚까지 지면 탐관오리, 돈도 못 벌고 살림도 못 하면 ‘어찌하오리’, 살림도 잘하고 돈도 잘 벌어오면 황금오리, 여기에 날씬하고 예쁘면 ‘사랑하오리’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 모두 ‘사랑하오리’는 아니라도 탐관오리나 ‘어찌하오리’는 피해야 한다는 우스개 섞인 교훈이다.

분수없이 돈을 펑펑 쓰다 빚에 몰린 사람에게 어르신들은 ‘경제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언어로는 회계 마인드가 없다는 얘기다. 기업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빚을 조금 지더라도 미래의 수입이 예상되어 충분히 갚을 수 있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부의 영역은 조금 다르다. 정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념적 요소도 작용한다.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일단 예산을 늘리거나 쓰고 보자는 태도를 취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현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가 빚을 늘려간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도 정부 부채가 많다. 미국의 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육박한다. 미국 국가채무시계 (http://www.usdebtclock.org)에 접속하면 이미 미국 국가부채가 20조4,500억달러를 넘었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빚이 늘어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1초에 약 2만달러씩 올라간다. 일본과 중국은 200%를 넘었고, 특히 중국은 증가속도가 빨라 세계 경제위기의 뇌관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 채무는 GDP의 40% 수준으로 건전하지만, 문제는 미래다. 국가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공무원증원 아동수당도입 기초연금인상 최저임금지원 등을 실시하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에 국가채무는 1,097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예상(986조원)보다 111조5,00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 정도라면 견딜 만하다. 하지만 일단 시작된 복지는 중단이나 축소가 어렵다. 줬다 뺏으면 반발이 더 크다. 그래서 2060년에는 국가채무는 1경5,499조원으로 GDP 대비 194.4%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채무를 상쇄할 대책은 있을까. 정부가 주장하는 소득주도 성장 역시 학계 등에서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일자리가 늘어야 소득이 오르지만,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을 닦달하는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규제ㆍ노동개혁 없이 혁신성장이나 일자리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 임금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은 일자리를 줄이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탈원전 정책도 문제가 많다. 당장 신고리 5ㆍ6호기 일시중단, 신규 원전건설 중단 조치로 이미 투입되었던 수천억 원과 미래 일자리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내 재산이라면 이렇게 했겠나. 더욱이 정부의 ‘건설 알레르기’ 때문에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도 대폭 줄었다. 그 때문에 사회 일각에서는 정부가 ‘건설은 하지 않고 허물기만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촛불집회 1주년에 “(적폐는) 광복 이후 성장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런 사상을 추구하는 사이에 그 그늘 속에서 생겨난 여러 폐단”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70년이 지난 오랜 과거를 응시하는 것이다. 1일 시정연설에도 적폐만 있고 협치나 포용은 없었다. 적폐는 진보와 보수, 과거 현재 미래를 몽땅 삼켜버리는 섬뜩한 언어다. 분노와 적폐에 집착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제 적폐 타령을 접고 국가의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국민이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서산대사가 임종하면서 남겼다는 시의 한 구절을 되새겨본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송이 눈이로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조재우 논설위원/2017-11-01(한국일보)
조재우 논설위원/2017-11-01(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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