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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살아남고 싶어" 안전모가 절실한 청춘들

입력
2018.03.02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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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선아'. 이야기꽃 제공
그림책 '선아'. 이야기꽃 제공

선아가 TV에 나와 눈물을 삼키며 진실을 밝히고 있다. 성추행과 성폭력이 만연했던 과거를 폭로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고통스런 기억들을 세상에 꺼내놓는다. 치욕과 두려움이 오랜 시간 그녀의 삶을 짓눌러왔지만 더 이상 침묵으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사회 초년생으로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간 직장에서 선아는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술자리에서 상사에게 추행을 당하고 권력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뛰어 넘어야 하는 장애물은 남성보다 더 높다. 학력과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나이, 외모, 결혼 여부 등 여성들이 갖춰야만 하는 스펙은 결코 만만하지도, 남성과 동등하지도 않다.

또 다른 선아는 취업준비생이다. 세상은 가진 것 없는 선아에게 많은 것을 원한다. 면접관들은 선아의 꿈보다는 졸업 후 변변한 경력도 쌓지 않고 무엇을 했으며, 결혼은 했냐는 등의 곤란한 질문만 한다.

학원건물 안에서 남학생들이 지나가는 선아에게 장난으로 쓰레기를 던진다. 버스에 오르려 하자 한 남성 승객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버스기사에게 겁박을 주고 있다. 그가 선아를 밀치고 가는 바람에 넘어져 안경이 부서졌지만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서는 잘못이 없는데도 손님으로부터 험한 소리를 듣고 연신 사과를 해야 한다.

선아는 지금껏 한 번도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넘은 적이 없다. 착하고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왜 매일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걸까.

이야기꽃 제공
이야기꽃 제공

‘살아남고 싶어.’

선아는 단지 안전한 삶을 살고 싶다. 선아는 공사판 안으로 들어가 놓여있던 노란 안전모를 집어 머리에 쓴다. 안전모를 쓰고 걷는 선아를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하지만 어느새 거리에는 수많은 청년들이 선아처럼 안전모를 쓴 채로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그림책 ‘선아’는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담담한 현실로 얘기한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재앙사회이다. 어디 청년뿐이겠는가. 장애인, 성소수자, 불법 체류자, 독거노인, 유기동물… 그리고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을 지켜낼 수 있도록 사회의 안전모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림책 작가 소윤경

선아

문인혜 지음

이야기꽃 발행∙48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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