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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돈, 여자에 대한 김훈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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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돈, 여자에 대한 김훈의 단상

입력
2015.10.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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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펴낸 소설가 김훈씨는 “낮고 순한 말로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책을 냈다고 밝혔다. 문학동네 제공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펴낸 소설가 김훈씨는 “낮고 순한 말로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책을 냈다고 밝혔다. 문학동네 제공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발행∙412쪽∙1만5,000원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발행∙412쪽∙1만5,000원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소설가 김훈씨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가 출간됐다.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 등 기존 산문집에서 몇몇 글을 가려 뽑고 새로 쓴 글 400매 가량을 추가해 묶은 에세이 선집이다.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에서도 선 굵은 문장과 사유를 드러내온 작가는 이번 책에서 아버지, 돈, 밥, 세월호, 여자 등의 주제를 내세워 세상과 내면의 풍경을 기록한다.

작가의 눈길은 유난히 자주 음식에 머문다. “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밥벌이의 지겨움’)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작가에게 음식은 우리를 생존케 하고 다시 생존경쟁의 장으로 내모는 “빼도 박도” 못할 낚시바늘이기 때문이다.

밥만큼 애잔한 음식으로 이번엔 라면이 소환된다.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었던 라면의 빈곤한 맛을 작가는 현재 한국의 정신적 부박함과 기어이 연결시킨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고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라면시장은 위축되지 않는다. 라면은 한국인의 정서적 토양의 기층에 착근되었다. (…) 부자들도 라면을 좋아할 수 있고 부자들이 때로는 라면을 먹기도 한다고 해서, 라면시장의 팽창이 자본주의의 싹쓸이가 몰고 온 인간소외 사태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깊이를 상실한 라면 같은 사회가 “삶의 심층구조와 서사적 로망”을 잃어버린 한국문학과 연계되는 대목에선 작가의 굵은 미간 주름이 오버랩되지만, 그는 경멸을 눌러 참고 연민에 몸을 누인다. 낚시바늘에 꿰인 미끼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물고기를 보며 청승맞은 어부처럼 눈물 짓는 것이다.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 (…) 그 아이는 나처럼 힘들게,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작가의 말에서 그는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책을 엮었다고 밝혔다. 정확히 말하면 낮고 순한 개탄이지만, 점점 종교적 성격이 강해지는 개탄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다. 그리고 문장도 여전하다.

하지만 ‘라면을 끓이며’는 출간되기도 전에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논란에 휘말렸다. 발매 전인 지난달 17~23일 예약 판매만으로 한국출판인회의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1위를 차지하자 이정서 새움출판사 대표는 “교보문고에서 발표한 주간 종합베스트 순위 200위 안에도 없는데 전국 온ㆍ오프라인 서점을 다 합한 순위 11위에 올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학동네 출판사는 “교보문고 종합순위는 오프라인 판매만 집계한 것”이라며 “예약구매자의 주소 등 모든 판매기록이 남아있다”고 반박했다. 또 소송을 통해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출판인회의 측은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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