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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두 개의 한국' 공저자 "朴대통령 제대로 못해 놀랐다"

입력
2015.04.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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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엔 끝이 '끝'이 아닙니다. 뒤끝뉴스는 취재 그 뒷이야기, 기사 그 다음 스토리를 전합니다.

'두 개의 한국'의 공저자인 로버트 칼린. 그는 한국말이 유창하기로도 유명하다. 조철환 기자.
'두 개의 한국'의 공저자인 로버트 칼린. 그는 한국말이 유창하기로도 유명하다. 조철환 기자.

“중국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뉴욕에서 폭풍이 발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 어디에선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가 반대 쪽에는 큰 충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첨단 수학의 한 부류인 프랙탈 이론의 ‘초기 조건 민감한 의존성’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 수도 워싱턴에 상주하는 한국 특파원들은 ‘프랙탈 이론’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 미국 워싱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반대로 이곳 미국 언론은 신경도 쓰지 않는 ‘나비 날갯짓’이 한국에서는 태풍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사건일 겁니다. 사건 초기에는 이 사건이 한미 관계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맞췄습니다. 다행히 큰 파장이 없어서 한숨을 놓고 있었는데, 리퍼트 대사가 병상에서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을 탐독했다는 소식이 한국에서 전해졌습니다.

소식을 접하는 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생처럼 아끼는 리퍼트 대사가 한국에 부임하기 전 저자들을 만나 무슨 조언이라도 받아간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서울 편집국에서도 ‘저자들을 만나 보라’는 주문이어서 곧바로 섭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 책은 원래 돈 오버도퍼(84)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단독 저작물이지만, 재개정판부터 로버트 칼린(68)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위원이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한국어 능숙… 북한 신년사도 스스로 분석

오버도퍼 교수는 고령으로 최근 활동이 뜸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칼린 위원을 접촉키로 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CISAC 소속의 이메일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스탠퍼드대는 워싱턴에서 비행기로 5~6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캘리포니아 주에 있습니다. 칼린 위원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것을 전제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메일을 통한 서면(書面) 인터뷰도 가능하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4, 5일이 지나도 응답이 없어서 다른 방법을 궁리 중인데 3월말 ‘워싱턴시에 체류 중이니 날짜를 잡아보자’는 답신이 왔습니다. 워싱턴에 집이 있고 캘리포니아는 강의가 있을 때만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4월3일 워싱턴 한복판, 정확히 말하면 코네티컷 애비뉴와 L스트리트 교차점에 있는 메이플라워 호텔 1층 커피숍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그는 답신 메일에서 “이란 핵 협상과 북핵을 연관시켜 의견을 묻는 질문은 없기를 바란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탐독했다는 책 '두 개의 한국' 표지.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탐독했다는 책 '두 개의 한국' 표지.

1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시작부터 당초 기대와 다르게 전개됐습니다. 1974년 중앙정보국(CIA) 직원으로 서울에 부임한 이래 30년 넘게 남북한을 깊숙이 들여다 본 칼린 연구위원은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북한 신년사를 분석해 북한 지도부의 의중을 파악할 정도지요. 그래서 워싱턴 부임 이래 최초로 미국 사람과 한국어로 의견을 나누게 될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귀하의 한국어 실력이 나보다 뛰어난 걸 알고 있으니, 한국어로 대화할까요”라고 영어로 제의했더니, 미국인답지 않게 겸손한 이 분. “한국어로 얘기하면 의사전달에 혼란(messy)이 올 수 있으니, 영어로 하자”고 거절하시더군요. 모처럼 쉬운 인터뷰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졌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리퍼트 대사가 당신 책을 탐독했다는데, 평소 잘 알고 계신가 보군요?”하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당연히 영어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라고 대답하시네요. ‘몇 번 어디서 만난 적 있다’고 말하면 그걸 꼬투리 삼아서 이어가려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였습니다. 칼린 위원은 “서울을 방문했을 때 어느 호텔 앞에서 개를 데리고 나온 리퍼트 대사를 본 적은 있다. 그런데 그는 나를 모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리퍼트 대사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뭔가요?” 대답은 “없습니다”였습니다. 또 “(두꺼운 책인 만큼) 끝까지 읽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 "리퍼트 대사가 탐독? 우린 모르는 사이”

결국 칼린 위원이 ‘그것만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이란 핵과 북핵을 물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의외로 이 때부터 인터뷰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란과 북한을 달리 보는 이유 ▦오바마 대통령은 왜 북한을 혐오하는지 ▦북한 김정은 정권이 왜 쉽게 망하지 않을 거라고 보는지 등에 대해 전문가의 식견을 발휘해 설명하더군요. 이들 내용은 한국일보 6일자 보도(▶ 기사보기)를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칼린 위원 얘기 중 지면에 싣지 못한 일부를 소개하려 합니다. 칼린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기대보다 제대로 못해서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노무현 김대중 등 이전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어떤지 물었더니 “기대했던 것보다 못하다. 박근혜 정부는 몇몇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도 매우 잘못 대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접근을 시도하고 있지 않느냐”고 다시 질문했더니, ‘통일대박론’을 염두에 둔 듯 “한국 사회에서 시들했던 통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건 평가 받아야 하지만, 박 대통령 주변의 (외교ㆍ안보 분야) 참모들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몇 차례 산발적으로 이어진 초기 대북 제의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관리하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버린 한국의 대응 전략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정책 입안자’들이 ‘단기(短期)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먼 미래까지 분석하는 사람일 뿐, 상황에 대응한 전략을 짜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한국이 결정적 순간에는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느낌은 듭니다. “한국에서는 안보 위기 상황에서 중국보다는 미국 쪽에 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는 분위기를 전달했더니, “자연스런 일이고, 어떤 면에서는 불가피(inevitable)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은회색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칼린 위원과 아메리카노 커피와 몇 조각 크루아상(Croissant) 빵을 놓고 진행한 이날 인터뷰는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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