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페미니즘, 인문학 너머 소설에서도 대세몰이

알림

페미니즘, 인문학 너머 소설에서도 대세몰이

입력
2017.08.31 04:40
0 0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영 페미니즘' 소설을 출간한 강화길, 조남주, 박민정, 최은영(왼쪽부터) 작가. 세대론을 기반으로 직간접 경험한 성차별, 여성혐오 등을 소재로 다뤘다. 문학동네, 민음사, 한겨레출판 제공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영 페미니즘' 소설을 출간한 강화길, 조남주, 박민정, 최은영(왼쪽부터) 작가. 세대론을 기반으로 직간접 경험한 성차별, 여성혐오 등을 소재로 다뤘다. 문학동네, 민음사, 한겨레출판 제공

“페미니즘 리부트!”

출판계를 휩쓴 페미니즘이 한국문학의 핵심 주제로도 떠올랐다. 지난해 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이후의 고민,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자성이 작품 발표로 이어지고 있다. 출간 10개월 만에 27만부를 찍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필두로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문학과지성사),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등이 지난해 하반기 쏟아졌다. 이번 주에 나온 박민정의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강화길의 장편 ‘다른 사람’(한겨레출판)은 나란히 ‘영 페미(young feministㆍ젊은 페미니스트)’를 표방했다. 수년 간 문학계를 강타했던 ‘청년 백수’를 ‘여성혐오’가 대체하는 분위기다.

세대론으로 무장한 ‘영 페미’

‘82년생 김지영’이 여성혐오 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했다면, 박민정의 ‘아내들의 학교’는 여성혐오의 뿌리를 캐묻는다. 아버지의 첩이 한국 여자란 사실에 분노해 서울의 공단 여공을 죽인 이야기를 그린 단편 ‘행복의 과학’은 지난해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 사건을 여공의 시선에서 그린 연작 ‘ A코에게 보낸 유서’도 함께 써서 여성혐오와 민족 문제가 결탁하는 양상을 파헤친다. 단편 ‘당신의 나라에서’는 국가·민족간 여성 혐오감정을, 표제작 ‘아내들의 학교’는 동성애를 향한 사회의 배타적인 시선을 그린다. 해설을 쓴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광기에 휩쓸리지 않는 이성이야말로 이 시대 여성이 든 칼이라는 것을 박민정의 소설은 보여준다”고 평했다.

올해 초 계간지 ‘문예중앙’을 통해 김승옥 단편 소설 속 여성혐오를 비판했던 강화길은 장편 ‘다른 사람’에서 여성 혐오와 데이트 폭력을 다뤘다. 남자 친구의 데이트 폭력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폭로하다 역공을 맞는 주인공 진아를 그린 이 작품은 올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들은 “최근 급부상하는 영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영 페미’ 작가들은 자신의 세대론적 특징을 작품에 적극 반영한다. 강화길 작가는 “1986년생으로 남녀평등을 배웠으나 실제로는 미묘한 (남녀)차이를 느끼고 있었다”며 “우리 세대는 이를 구조나 사회보다 개인의 문제라 생각한 것 같다. 인물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내 작품이 모두를 설득하거나 어떤 이론을 전달하려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백지연 문학평론가는 “최근 작품들은 세대론적 특징을 뚜렷하게 기입하면서 사회적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82년생 김지영’ 속 ‘맘충’ 이란 단어는 시대적 차이를 집약하고 있는 표현이란 설명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역시 “이전 페미니즘 소설들이 여성 일상에 대한 탐구, 여성의 감수성이나 감각을 부각시켰다면 최근에는 이념적이고 전투적이고 분명하게 여성주의를 읽으려는 성향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출간된 80년대 생 작가들의 페미니즘 소설. 세대론을 바탕으로 일상의 성폭력, 성차별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출간된 80년대 생 작가들의 페미니즘 소설. 세대론을 바탕으로 일상의 성폭력, 성차별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 최대 독자 ‘30대 여성’ 취향 반영

문학계에서도 1990년대 이후 여성작가 작품에서 페미니즘은 보편적인 주제였다. 허나 지난 해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나쁜 페미니스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 페미니즘 도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 등으로 인해 페미니즘 소설이 다양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조남주 작가 역시 ‘82년 생 김지영’을 구상한 계기로 “여성혐오 현상을 미디어에서 접하다가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삶이 어떤가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보편적인 삶을 정리하고 싶어 르포 형식을 차용했다”고 말했다.

소설 시장 주 타깃이 20대에서 30~40대 여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실제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소설 구매자는 2010년 30대 여성(23.9%), 20대 여성(18.6%)이 가장 많았지만, 2011년 30대 여성(23.9%)의 뒤를 이어 40대 여성이 19.1%로 소설 구매 비율 2위를 차지했다. 30대와 40대의 격차가 점차 줄어 2014년에는 40대 여성(21.9%)이 30대 여성(21.7%)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한 후 지난해까지 줄곧 소설 구매 1위를 차지했다. 장은수 대표는 “소설 시장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강세인데다 독서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여성의 사회진출 이후 발생하는 문제들이 소설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며 “일상의 언어로 여성주의를 사고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점도 기존 페미니즘 출판물과의 큰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2010년, 2016년 소설 구매자 성 연령 추이
2010년, 2016년 소설 구매자 성 연령 추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