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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원두 향기…강릉이 커피도시가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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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원두 향기…강릉이 커피도시가 된 까닭은?

입력
2016.10.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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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선 커피를 앞에 놓고 겉멋부리지 않는 게 좋겠다. 13개 아카데미에서 매년 배출하는 바리스타가 1,000여명, 지금까지 최소 5,000명의 강릉시민이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커피 맛을 찾기 위해 가정에서 커피를 볶는다니, 어느 골목에선 아침마다 고소한 커피 향이 풍길지도 모른다. 커피축제를 주관하고 있는 강릉문화재단 송성진 부장에게 강릉이 커피 도시가 된 내력을 들었다.

안목 커피거리의 한 카페에서 내려다 본 해변 풍경. 강릉=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안목 커피거리의 한 카페에서 내려다 본 해변 풍경. 강릉=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데이트 명소 안목의 진화하는 자판기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안목항 커피거리에는 현재 22개의 커피전문점이 들어서 있고, 바로 아래 남항진까지 합하면 28개 카페가 성업 중이다. 안목항의 커피 역사는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강릉 시내와 구분 없이 연결돼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안목항은 시내버스가 하루 3차례 정도 다니는 시골 어촌이었다. 그래서 안목에 가면 하루 종일 붙어 있게 되고, 한적하면서도 바다가 예뻐 학생들 사이에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우리 안목 갈래?’, ‘그래 좋아’라고 하면 그때부터 사귀는 것으로 통했다.

아담한 분위기가 매력인 안목해변.
아담한 분위기가 매력인 안목해변.

횟집과 조개구이집 외에는 젊은이들이 찾을 변변한 카페 하나 없는 곳에서 이를 대신한 것이 커피자판기였다. 강릉문화방송 ‘별밤’ 에 소개되는 편지와 엽서에는 안목에 다녀왔다는 사연과 함께 몇 번째 자판기가 맛있더라는 평가가 빠지지 않았다.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자판기는 50여대로 불어났고, 1.2km 짧은 구간에 벽마다 빼곡히 늘어선 자판기가 또 진풍경으로 주목을 받았다. 가게마다 경쟁도 치열해져 똑같은 믹스커피에 콩가루, 참깨, 헤이즐럿을 첨가하는 등 자판기 커피의 진화가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안목항 커피거리의 1등 공신은 1박2일 이승기

데이트 장소로 인기를 끌자 1998년 ‘네스카페’(후에 ‘커피커퍼’로 개명)와 ‘모래 위에 쓰는 편지’라는 2개의 커피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이후 구정면에 커피공장, 왕산면에 커피박물관이 들어섰고, 시내에는 커피아카데미까지 생겨 2007년에는 커피도시로서의 틀을 갖추게 된다. 2009년엔 마침내 제1회 커피축제까지 열게 되고, 그 해 말 안목의 커피전문점은 12개로 늘어났다.

주문한 커피의 이름을 함께 내어주는 안목항의 한 카페. 입맛에 맞으면 다음에 또 찾기 쉽다.
주문한 커피의 이름을 함께 내어주는 안목항의 한 카페. 입맛에 맞으면 다음에 또 찾기 쉽다.

2010년 방영한 ‘1박2일’은 안목이 커피거리로 자리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대 공신은 12개의 커피전문점을 차례로 들러 각기 다른 커피를 맛 본 이승기. 이를테면 첫 번째 가게에선 아메리카노, 두 번째는 아포가토, 세 번째는 라테 등을 시음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이승기가 맛본 커피는 그 가게의 대표 메뉴로 자리잡았다. 아포가토를 먹었던 가게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은 하루 종일 아이스크림을 푸는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만 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회자되던 시기였다. 그렇게 안목은 자연스럽게 ‘커피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다도의 기본인 물맛과 풍광이 커피도시의 바탕

강릉시에서 커피축제를 추진하자 처음엔 반발이 심했다. 강릉은 전국에서 다도인들이 많은 곳 중의 하나, 다도행사에 연간 1,000만원을 지원하던 시에서 1억원을 들여 커피축제를 연다고 하니 ‘천 대 억’이라는 자조 섞인 항의가 빗발치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럼에도 커피도시의 바탕은 강릉의 차문화였다.

커피를 재료로 앙금을 만든 강릉커피빵.
커피를 재료로 앙금을 만든 강릉커피빵.
강릉 도심 명주동에는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특색 있는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강릉 도심 명주동에는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특색 있는 카페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신라의 화랑이 수련을 위해 금강산을 오가면서 차를 나누던 유적이 유일하게 남은 곳이 강릉 한송정이다. 현재 공군부대 안에 위치하고 있어 평시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야외에서 차를 나누는 ‘들차회’ 행사를 매년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차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물맛과 풍광, 커피에도 그대로 해당하는 조건이다. 미세한 맛의 차이를 감별해 내는 다도인들의 미각도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와 다를 바 없다.

현재 인구 22만의 강릉에 카페 수는 대략 360곳. 적정수준인 220개를 훌쩍 넘겼지만, 송성진 부장은 강릉 커피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커피가 강릉의 문화와 산업까지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시청이 이전하면서 강릉도 구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 이후 커피 붐을 타고 쇠락해가던 도심에 하나 둘씩 카페가 들어서면서 젊은 층의 발길이 늘어나고 골목마다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커피미용팩과 미스트, 커피비누와 머그컵, 커피기정떡과 커피빵 등 커피를 재료로 한 배후산업의 발달은 예상하지 못한 효과다.

이제 강릉에선 안목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커피 향이 넘친다. 최근에는 강릉역에서 명주예술회관에 이르는 명주동 일대 골목에 개성 넘치는 카페가 속속 들어서 새로운 커피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강릉 주요관광지 13곳의 관광안내소나 명주동의 강릉문화재단에 가면 강릉의 모든 카페를 수록한 강릉커피지도를 구할 수 있다.

강릉=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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